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재이와 시옷 2012. 1. 2. 22:25

2012년 새 해가 밝았다. 
올 해는 '흙룡의 해' 라고 한다. 
빠른 년생이기는 하지만, 띠로 본다면 용띠인 나이기에 어쩐지 나의 해가 된 것 같기도 한 그런 착각이 들기도 하고 여튼간 왠지 모르게 기운이 솟아야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 정리가 안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11년 12월 31일에서 2012년 1월 1일로 넘어가던 12시를 넘긴 시각. 잘만 작동되던 넷북이 멈췄다. 
오빠 스마트폰의 세팅을 해놓고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을 보며 치킨을 뜯고 있던터라 전원을 넣은 넷북에 신경을 단 1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다 먹고 상을 치우려 넷북을 보니 모든 것지 정-지. 윈도우가 깨졌다.
컴퓨터를 좀 잘 아는 친구 홍구(컴퓨터 관련된 일 또는 이야기 할 때가 유일하게 멋있다. 다른 때에는…)에게 이러이러한 배경으로 넷북이 멈췄다고 하니 묻지도 따지지 않고 윈도우가 꺠진거란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찬숙이가 애지중지하던 야동들은 이제 어떡하냐며, 윈도우만 덧깔으면 자료는 살릴 수 있을테니 그리 노여워도 말고 슬퍼도 말라하던 홍구. 

난 야동이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적어놓으니 뭔가 되게 웃기네. 그렇지만 이건 진실이야. 난 야동이 없어. 대신에 다른 미디어파일들은 많았다. 넷북의 총 용량이 150기가였다. 그 중에 90기가 가량이 영화들이었다. 보았던 것 중에 가슴이 짠-해져 여러 번 묵혀두고 볼 요량으로 소장하고 있던 영화들이 몇 편 있었고, 앞으로 보기 위해 친구 외장하드에서 털어온 영화들도 있었다. 그리고 약 20기가 가량은 여행사진 원본들이었다. DSLR로 촬영한 것들이어서 픽셀수가 많다보니 사진 한 장의 용량도 일반 사진 용량보다 컸던지라 전체 용량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여름 내일로 여행 때 사진들을 뒤늦게 포스팅하고 있는데 아직 포스팅하지 못한 사진들이 300장 가량 있었다. 여름 내일로 사진만!!!!! 11월에 다녀온 순천 여행과 서울숲 방문 사진도 약 500장이 되는데, 궁에 다녀온 사진도 150장 가량 되고 등등등. 
지난 해(이틀 차이로 지난해가 되었다.) 1월부터 저장해 두었던 Y와의 대화.txt 파일도 약 40개 가량 있었는데 이것들도 모두 소산되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적어왔던 내 글들도, 워드 100장 가량의 그 글들도 모두 사라졌다. 
 
나는 이 쪽을 잘 모르는터라 엉엉거리며 Y를 찾았다. 단 번에 윈도우가 깨진거라고 홍구와 똑같이 진단한 Y는 최대한 자료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려 했지만, 오버라이팅이 어떻게 되고 저떻게 되어서 결국엔 싹 밀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무사히 부팅은 되었지만… '그것'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아있진 않게 된 것이다. 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나를 토닥여본다.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걸까.
다시는 찾을 수 없게, 그 뒤를 따라가볼 수도 없게, 그렇게 사라지는 걸까. 흔적없이. 가상의 우주 그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어느 모서리에서들 만나 '삭제 된' 이라는 카테고리로 뭉쳐 서로의 슬픔을 다독여주고 있진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정말 그렇게 사라진걸까.
 
그냥, 조금, 아쉬워서 그렇다. 아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