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기차여행을 하며 잠시 들렀었던 몇 해 전의 경주. 기차 시간이 빠듯하여 남들 다하는 자전거 빌려타기도 못해보고 삼천원 짜리 우산 꼭지 하나에 의지해서 역 근처를 뽈뽈거렸던 기억. 밥 한끼 먹지 못했고 첨성대 지척으로 가지 못해 먼 발치에서 사진만 몇 장 담았던 것이 고작이었다. 밤의 안압지를 보는 호사는 당치 않고 그곳으로 가는 연꽃길이나 조금 걸었던 게 전부. 그리고 올해 겨울, 약 열흘 가량을 눈이 덮인 경주에서 보냈었다. 무척이나 평화로웠지만 쉬이 밖을 다닐 수 없던 환경에 별장 밖으로 나와 산길을 돌며 콧바람을 들이키는 것에 감사했던 겨울. 그리고 다시 계절이 두 번 바뀌어 여름, 경주를 찾았다.
내가 도착한 것은 11일 월요일. 그 전 주에는 내내 비가 쏟아졌었다고. 의아해하는 것이 당연할만큼 하늘이 높았고 해가 빛났다. 오후가 반짝이다 못해 번쩍번쩍하던 화요일. 차를 타고 별장에서 한시간 반 남짓을 달려 주상절리에 다녀왔다.
주상절리 가는 길에 있던 감은사지삼층석탑.
경주에서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호쾌한 풍경을 마주 보니 기분이 몹시 좋았다. 오래 운전해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내가 하진 않았지만(...) 사흘의 시간동안 눈에 담은 것들 중 주상절리가 가장 좋았다. 바다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좋다. 무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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