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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6) 마음을, 생각을, 잘

마음을, 생각을, 잘

재이와 시옷 2016. 1. 23. 21:51

 

 

  냉장고 안 귀퉁에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며칠 된 식빵처럼, 눈으로 마음으로는 흘깃거리면서 버려 놓았던 2015 두계절이 지나간 나의 블로그. 애정을 아주 접지도 못하여 마음은 계속 쓰고 있었으면서 기록도, 짓는 것도 모두 흥미를 잃어 될대로 돼라는 생각으로 한 켠에 치워놓았다. 의욕이 없으니 될대로 돼라는 막무가내의 주문이 통할리 없었다. 무엇이 되지 않았고 그저 여기 있었다. 제자리. 나의 마음을, 저 아래 구겨 접어놓았던 먹지 같은 그것들을 꺼내놓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백지. 이제는 찾아갈 수 없는 철원의 아버지 가게처럼 나의 도피처가 되어주는 곳. 이곳.

 

  마음을, 생각을, 잘.
다이어리에 가장 먼저 새기는 문장이 있다. 문장은 매해 다르다. 나름의 슬로건이랄까, 만성 게으름을 앓고 있는 나라서 어떤 목표들은 그 의미를 쉽게 잃기 마련인데, 눈에 띄는 곳에 붙박이장처럼 문장을 끼워 넣고 나면 오며가며 눈길 주고 마음 주다가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라고. 오래 고심하진 않는다. 펜을 쥐고 '무엇을 적을까' 잠시 골몰하고 순간 떠오르는 몇 개의 문장 중 무심하게 툭 하나 골라낸다. 그러해서 올해는 '마음을, 생각을, 잘.'이 되었다.
  해가 바뀌고 1월 1일이면 직접 다이어리를 사러 밖으로 나간다. 대형서점에 들러 문구 쪽을 오랫동안 뒤적이다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 한 권을 집어온다. 몇 년 동안 그래왔다. 정확히 몇 년인지, 올해 쓰는 다이어리가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집이 아닌 밖이고 다 쓴 다이어리는 책장 한켠에 흥부네 자식들마냥 한 데 모아 쪼로록 꽂아놨기에. 그것들을 세어 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마도 스무살부터인 것 같다. 아니면 스물 한 살. 그렇다면 아홉번째 다이어리다.

 

  절기를 세 듯 가볍고 수줍은 마음으로 하루를 짓고, 달을 묶어 한해의 나를 만들어야지. 잊지 않고 기억해야지. 사진을 찍고 적어 두고 수시로 생각하고 여기저기 새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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