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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6) 마음을, 생각을, 잘

'왜'와 '그래서'

재이와 시옷 2021. 8. 17. 16:24

 

 

어디서부터 일까.

'틀린 부분을 체크하시오' 같은 퀴즈였다면 조금 더 쉬웠을까. 인생은 물음표 투성이인 것 같은데 왜 정답만 모아 놓은 해설지는 눈에 띄지 않는 걸까. 머릿속에 두고도 못 찾는 걸까. 한참을 뒤적거린 것 같은데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애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사랑받지 못한 유년을 스스로 떠올려야 할까. 가혹하게.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헤집고 헤집어 엉망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미안함이 있어서'라고 했다.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시절을 함께 보냈지 않은가. 일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 자란 우리였다. 할머니 손에서, 품 안에서 따뜻하게 자란 장남과 조금 비스듬한 그늘 아래서 품보단 바깥 볕이 더 좋아 괜찮다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란 막내딸. 그렇게 자란 남매지 않은가 둘은.
나는 어렸다. 오빠도 어렸지만 나는 오빠보다 더 어렸잖아. 나는 동생이었으니까, 막내였으니까.
더 보살핌 받고, 더 관심 받고, 더 사랑받았어도 됐잖아. 더 나를 생각해 주고, 더 나를 아껴주고, 더 내 어리광을 받아줄 수 있었잖아. 일에 매여 아들딸을 돌아보기 어려운 엄마 아빠를 대신해 그 자리엔 장남이 마냥 예쁜 할머니가 자리했잖아. 

나는 정말 모르겠다고. 네가 뭘, 어떻게, 얼마나 '차별' 받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당연하잖아. 오빠가 어떻게 알아. 오빠는 차별받은 적이 없는데. 내가 받았는데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내 심정을 오빠가 어떻게 느끼느냐고. 말이 안 되잖아. 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내게 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도, 나는 정말이지 모르겠지만 네가 그렇게 느꼈고, 그 감정의 트라우마가 아직까지 있는 거라면, 네 말마따나 그런 거라면, 그래 내가 보상해주면 되잖아. 라고 했지. 오빠가 내게 잘해주는 거, 내게 '미안함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

 

가족이란 단어를 운운하는게 우습다고.
가족이란 단어를 운운하는게. 가족. 운운하다. 우습다.
왜, 나는 가족이 아니었나. 아니었나. 그게 왜 우스워?

 

못 믿잖아. 안 믿잖아, 나를.
내가 그렇게 만든 거라고. 못 믿을 행동을 했으니까. 항상 그래 왔으니까. 그런 너를 어떻게 믿겠느냐고.
다, 다, 너가, 잘못한 거라고. 나를 믿었던 적은 있었어? 있던 믿음이 사라진 거야, 정말? 있었어, 어떤 믿음이라는 게?
허무의 공간에 쌓은 탑이지 않았나. 실존하지 않았잖아. 처음부터.

 

2016 / 05 / 0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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