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6) 마음을, 생각을, 잘

악의없음으로

재이와 시옷 2016. 2. 10. 22:59

 

악의 없음으로.
악의 없음으로 상처 줄 수 있음을.
의도하지 않은 말들, 마음들, 문장들, 그를 포함한 모든 권유들 또는 위로들, 그것들 모두가.

 

 

위로라는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힘의 크기를 조절하지 못하고 뭉툭하게 나의 어깨로 떨어지던 당신의 팔을. 내릴 수도, 뿌리칠 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대로 받아냈다. 툭툭 아프게 떨어지던 그 무게가 당신이 묵혀 놓은 마음의 무게 인가 하며 그렇게 가만히 자리에 엎드려 누워 있었다. 눈을 맞출 수 없었다. 제멋대로 이미 터져버린 눈물이, 당신과 얼굴을 마주한 순간 더 미쳐 솟구칠 것 같았기에. 

 

걱정이 돼서 그랬던 거겠지. 어떤 악의 없이, 당신이 쭈뼛거리며 꺼낸 어색한 서두처럼 '이간질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말이었겠지. 이렇게 느껴졌는데 이것이 진짜인가 확인하고 싶은 거라고. 너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거라면 어떡하지? 하는 질문도, 망설임도 담겨있지 않았다. 악의 없는 호기심. 앞의 수를 보지 않은 질문. 한 수만 내다봤다면. 단 한 수만. 그랬다면 한 밤 이렇게 잠을 설치지 않았을 텐데.

 

 

숨겨두지 말고, 감춰두지 말고, 묵혀두지 말고.
꺼내라고, 꺼내서 말을 하라고, 그래야 한다고.

 

 

왜, 왜, 왜 이제서야 내게 그런 말을 하는지. 가르쳐 준 적 없잖아요. 내게 물어보지 않았잖아요. 들어주지 않았잖아요. 숨기고, 감추고, 삭히고, 묵혀두기만 바랐으면서 그랬으면서. 왜 이제서야, 왜 이제 와서 내게 말하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모두 까먹었는데. 마음을 말하는 방법을 까먹었는데. 양방의 소통이 없다는 걸 너무 이르게 알아버렸는데.

 

당신의 악의 없는 그 말들에 나는 애꿎게 나를 나무라는 밤을 보냈어요.
나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고. 바짝 다가가기 불편한 딸이라서 내가. 그만큼밖에 여지를 주지 않아서 내가. 그래서라고. 내 잘못이라고 끄덕이며 스스로를 힐난했어요. 불쌍하잖아. 전생 무슨 큰 죄를 지어 나의 엄마로 태어나, 이생 모정까지 의심받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은 모두 너무 아프잖아.

 

다 괜찮다는 말만 했다. '다들 괜찮은데 왜' 라는 말을 반복했다. () 괄호를 숨기고 감추고 다 괜찮다는 말만 했다. (나만 괜찮으면 되는데) 라는 괄호를 삼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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