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6) 마음을, 생각을, 잘

춘삼월, 이라 부르지 않았었나

재이와 시옷 2016. 3. 13. 22:00



  달에 두 번. 날씨를 문자로 옮겨놓은 그것이 참 신기하고 예뻐 달력에 적힌 절기를 꼼꼼히 소리내 읽어보곤 했다. 아주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게 꼭 맞아 떨어질 수가 없다며 절기가 일러주는대로 옷을 꾸려입고 때론 후회도 하고 꽃내음을 깊게 들이쉬며 경탄도 하고 그랬다.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내지 않았나.
  우리의 시기를 '춘삼월'이라 부르곤 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곧 춘삼월이 도래하지 않겠나, 그때가 되면 우리 역시 꽃피겠지, 우리 또한 활짝 피어나겠지 따뜻하겠지 아름답겠지 우리의 사랑이 더욱 무르익겠지. 


  시절이었다. 아름다운, 말로 다 할 수 없이, 야릇한 봄내음으로 가득했던, 그런 시절. 


  마음을 쓰는 방법을 다시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배워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터라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심지어 '못'하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마음을 쓰는 것이 내게 그리고 네게 어떤 것인지 다시금 복기하고 적어내려가는, 그런 요즘이다. 지금 또한 어떤 시절이겠지.


  대개의 순간들마다 떠오로는 얼굴 하나에 대해.
  얕은 비가 훑고 지나간 새벽의 거리를 걸으며 또박또박 소리내었다.
  그래, 마음이겠지. 이것은 마음이다.


  승패없이, 성과없이 지나가는 무의(無依)의 바람일지라도 괜찮다-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을 그렇게 먹었다. 그 마음을 배우고 있다. 그렇게 마음을 쓰고 있다. 우리의 시절을 춘삼월이라 부르곤 했다. 이제 나의 시절을 다시 써야 한다. 나의 시절을 틔워야 한다. 







/ 로또가 될 것만 같은 극도의 긴장감. '와, 진짜 될 것 같은데 진짜 돼버리면 어떡하지? 와앀'




/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것들아. 로또 1등은 무슨 시벌탱.




/ 2월, 구정 즈음 만난 수박이가 매장 단골 손님에게 받았다며 건네 준 종이가방에는 한라봉이 가득. 우왕.




/ 생애 첫 로또 당첨. 5천원이라니! 와, 5천원이 되었다니! 현금으로 바꾸고 그것을 계속 지갑에 지니고 싶었는데 5천원 당첨은 로또로만 교환이 된다고(...) 당첨이 된 적이 없으니 이 사실을 내가 알 턱이 있나.




/ 꾸준히 연습하지 않아서인지, '리을'은 아직도 모양이 예쁘지 않다. 특히 '로'자를 쓸 때면 모양이 구겨지기 일쑤. 몇 년 전부터 들어버린 플러스펜을 좋아하는 것, 책을 읽으며 여기저기 메모하는 것 등의 습관들. 새해가 되며 한 달에 최소 두 권의 책을 읽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아직까지는 잘 지켜지고 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서 마음을 생각보다 굳게 다잡아야 한다는 한심한 태세를 갖춰야 하지만, 그래도 잘 지켜지고 있다. 사놓고도 선반의 행렬 뒤편에 둔 터라 마치 읽었다고 착각했었던 김연수의 책 몇 권들을 읽는 중이었다. 사는 욕심을 줄이고, 이처럼 착각했던 책들을 다시 골라내 읽으려 한다. 그렇다고 책을 한 권도 안 산 것은 아니다. 뭐지.




/ 소설집은 호흡이 짧아서 크게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항상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꾸준히 사게 된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소설집을 꾸준히 내기 때문일까? 무의식적으로 짧은 호흡을 선호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이 책에서는 -공야장 도서관 음모사건-이 가장 재밌었다. 단편에 나오는 '선풍기 수집가'라는 직업이 아주 흥미로웠다. 




/ 합정역과 상수역 중간쯤 카페 '시간의 공기'에서 마신 비엔나커피. 단 것을 좀처럼 좋아하지 않다보니 시럽, 크림 등이 올라간 커피는 평소 전혀 즐기지 않는데, 이 날은 왜인지 이틀 전부터 속이 부대끼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약국에서 소화 관련 약을 두 종류나 사먹었다. 커피, 음주는 좋지 않다고 하셨는데 아주 내려놓지는 못하고 그나마 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골라 마셨다. 이래놓고 홍대 코요테살룬에서 피자 먹으면서 맥주 한 잔 마신 건 안 비밀.




/ 나 노는 것이 꼴보기 싫다는 두툼이의 말에 따라 다시 반베짱이가 된 나는 보건소에 들러 보건증 재발급을 받아야 했다. 외식업 알바쟁이의 보건증 굴레. 강남보건소 맞은편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녹차라떼를 마셨다. '그린티라떼 그란데 사이즈로 샷 하나 추가해주시구요, 머그에 부탁드릴게요.' 가까운 이의 특별 주문을 외워두고 그것을 대신 말하는 순간은 퍽 낭만적인 것 같다. 나만 그래?




/ 강남 카페 떼시스. 1층부터 지하까지 공간이 넓어 테이블이 많고 커피맛이 괜찮다. 티라미수라떼라는 시그니처 메뉴를 판매하고 있는데 그것 역시 맛이 괜찮다. 달아서 그렇지. 아무렴 이름에 티라미수가 들어가는데 달지 않은 것도 의아하겠지. 떼시스에는 머그가 없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 물론 하루 이용 고객이 많아 머그를 일일이 세척해야한다는 부담과 수고스러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머그는 있었으면 좋겠는데.




/ 공덕역 카페 프릳츠커피컴퍼니. 빵이 맛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산미가 조금 있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준까지의 산미. 딱 그정도의 산미가 있었다. 피자빵과 함께 마셨다. 크로와상이 맛있었다. 두 입 먹었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터 빵을 별로 안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또 생각해보면 빵을 환장하게 좋아했던 때도 없던 것 같다. 뭐가 뭔지.




/ 패배의 포켓볼. 요즘 들어 자주 치다보니 실력이 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게임비 계산의 쓴 맛을 피할 수는 없는 것. 카드 내밀며 한 숨 길게 쉬니 당구장 사장님이 이거라도 받고 기운 내라며 코인초콜렛 주셨다. 고맙습니다(...) 




/ 합정역 가는 길 카페 아이들모먼츠. 오랜만에 찾았다. 소파 자리를 득하여 기분이 좋았다. 가게 내부가 조금 싸늘했다. 와이드팬츠 아랫단으로 찬바람이 들었다. 푸딩이 맛있었다. 정성으로 구웠지만 다 타버린(ㅋㅋㅋㅋㅋㅋㅋ) 가래떡을 먹었고 의아하면서 괜히 뭉클한 은반지를 선물 받았다. 




/ 블루투스 스피커는 참 기특하다. 사용할 때마다 대견해서 칭찬해주고 싶고 그렇다. 저 쬐매난 것에서 소리가 우렁차게 왕왕 하는데 괜히 뿌듯한 기분. 비 오는 토요일. 외출을 앞두고 옷을 대충 꿰어 입고 침대 아래 기대 앉아 노래를 들었다. 바깥 빗소리에 묻혀 가슴에 깔리는 작은 우울을 만끽하면서.




/ 인덕원역 카페 팡팡. 애프터눈티세트를 먹어 보았다. 이름 한 번 길다 참.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스페셜 티 중 여러개를 시향하고 마음에 드는 것으로 마셨다. 이름이 화이트 뭐시깽이였는데. 아- 되게 맛있었는데 여기서 막히네요.












/ 한남동 디뮤지엄. 인스타충이 되어 보자며 리스트여신과 민나인과 함께 공짜 티켓으로 방문했다. 아홉개의 빛을 둘러 본 것 보다, 건물 나서기 전 발치에 놓인 빛무지개를 본 순간이 더 좋았다. 전시를 둘러보며 들었던 생각은 '핸드폰 배경화면 찍으런 온 기분이다.'




/ 합정역 카페 콜마인. 의자가 편치 않고 내부가 어두워 사진을 찍으면 노이즈가 쩐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대로가 마음에 들어 요즘 들어 혼자 자주 찾는 곳. '몸의 일기'라는 책을 한 달 전에 사두고 이제 읽으려 이 날 처음 챙겨 나갔었다. 테이블에 올려두고 커피를 가져다주신 직원분께 펜을 좀 빌리려 말을 떼었는데 직원분이 '좋은 책 읽으시네요' 하셨다.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왜지? 그냥 그 말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다.




/ 두툼이가 신발을 사고 몰래 숨겨놓았더랜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잔소리 들을까봐 그랬단다. 아니 그럼 안사면 되잖아? 이제와서 못 참겠다며 안방에 상자째 던지는 패기는 또 무어란 말이야? 참나 지네도 아니고.




/ 불편을 감추는 방법이 아직도 서툴다. 아마 평생 서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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