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쫓겨난 꿈

재이와 시옷 2022. 6. 25. 20:54

 

 

여기서 깨고 싶지 않아 억지로 두 눈을 감고 최대한 몸에 힘을 풀어 본다. 달아나려는 잠의 끝을 억지스레 잡고 양껏 빌면 그마저도 방해가 될까 미약한 바람처럼 끝을 잡는다. 다시 꿈에 들고 싶어서.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처음 2년 정도는 꿈에서 만난 당신이 진짜인 줄 알고 그 앞에 엎드려 엉엉 울었었다. 당신이 죽은 줄 알았다고, 그래서 너무 아프고 너무 힘이 들었는데 내가 사는 세상에서 당신을 잃어 가장 슬픈 사람들은 당신 가족이라는 걸 알아서 나의 슬픔이 건방져 보일까 봐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다고, 매일매일 나를 견디고 당신이 없다는 현실과 일상을 견디느라 너무 힘이 들었다고. 그렇게 응석을 부리고 억울함을 토로하며 당신 앞에서 많이 울었었다. 불현듯 떠진 눈에 정신을 차려보면 나를 끌어안은 내가 그 방안에 덩그러니 구겨져 있는 거지.
양손을 쓰고도 부족한 햇수가 되고 나니 당신을 마주하자마자 '이런, 꿈이구나.' 바로 알아차린다. 꿈속 당신마저 간절하고 내게 너무 달아서 품에 안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당신을 삼키고 싶은데 어떤 시간의 얄팍함인지 나는 늘 당신에게 말할 수 없고, 전부 기억이 되지도 않는 당신의 몇 마디 말을 듣고 나면 그 꿈에서 쫓겨나. 당신이 초대하는 것인지, 내가 아득바득 그 문을 두들겨 선심 쓰듯 몇 번 열어준 것뿐인지, 깨닫게 되는 건 같아. 내가 꾸는 꿈이지만 내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늘 쫓겨나. 

 

어제 꿈에는,
당신도 없었고 나라고 봐야 할 것 같은 '어떤 나'와 과거 내가 사랑했던 걔가 나왔는데. 어느 날 일기에 그렇게 쓴 적이 있어. 나만 그 애에게 맹목으로 붙드는 이유가 그 관계는 내가 지킬 수 있으니까라고 말이야. 아직 나와 닿아있고 몇 달 만에 연락을 해도 수화기 너머에선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애는 살아 있으니까. 나와 닿아있지도 않고, 주인을 잃은 번호도 아니고, 살아있지도 않아서 내가 어떻게 해도 지킬 수 없는 당신이 아니라.
꿈에서 그 애와 나는 지금보다 몇 살 더 나이 든 것 같았어. 그 애의 솜씨로 이루어진 어떤 스크랩북이 내 손에 쥐어져 있고 열어보니 사랑의 말이었어.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이 어쭙잖은 감정과 혼자만의 책임감도 사랑이라고 생각을 해. 성애적이든 아니든. 그런 뿌리에서 자라난 어떤 내 욕망이었던지 꿈에서 내게 그런 약속을 해주더라고. 꿈인 줄 알았는데 좀 더 머물고 싶었어. 듣고 싶은 말이었던 건지, 그 위로에 조금은 잠겨있고 싶었어. 깨고 싶지 않았는데 꿈이라는 걸 눈치채고 나니까 공간이 흐릿해지면서 연결이 느슨해지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러곤 언제나처럼 꿈에서 쫓겨났지 뭐. 

 

몇 주 전 가족모임에서 맥주를 잔뜩 마시곤 취해서 그 애에게 전화를 했었어. 몇 달만의 통화였던 것 같아. 건너편은 무척 소란스러웠고 나는 왜인지 모르겠는데 줄줄 울고 있었어. 그 시간 내 전화가 당황스러웠던 건지, 우는 내 목소리가 난감했던 건지, 너는 곤란한 듯한 목소리였고 나는 몇 마디를 울음처럼 주절거리다 전화를 끊었어. 무슨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 그냥 너머의 그 느낌만 기억이 나. 그러곤 다시 울었던 것 같아. 여름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그냥 요즘은 퍽 외롭고 꾸준히 그리운 것 같아. 그러다 왕왕 슬프고 종종 사라져 버리고 싶게끔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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