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화요일 19일

재이와 시옷 2022. 7. 19. 20:50

 

 

내가 타지 않을 여러 대의 버스 뒤에 자리 잡은 144번 버스를 빨간불 신호에 맞춰 차분히 올라탔다. 여느 월요일 또는 화요일처럼 약수역에 가는 경로다. 며칠간 놓친 다른 사람들의 sns 피드와 인터넷상 꼭지 글들을 보며 한참을 간 것 같은데, 도통 익숙한 정류장 이름이 귀에 들어 올 생각을 않는 거. 얼마나 더 가야 하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보니 어? 왜 145번이지. 강남에서 탔는데 왜 나는 압구정에 와있지. 지체하며 모르는 동네를 순회할 순 없기에 일단 내려본다. 백화점 앞이네. 그냥 약수역에 가서 쌀국수랑 밥알을 어제 하루 못 먹었으니 나시고랭도 같이 배부르게 먹을 생각만 했는데 왜 나는 압구정 백화점이지. 301번 버스를 타고 폭이 긴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 마침내 약수역에 왔다. 공심채 볶음밥과 나시고랭 사이에서 꽤나 치열하게 고민하다 나시고랭을 골랐는데 다음엔 꼭 공심채 볶음밥을 먹자고 다짐하는 결과를 맞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 들르는 카페에 걸어와 주인 발치에 배 붙여 엎드린 커다랗고 예쁜 레트리버를 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늘 조금은 억울한 것은 내가 개와 아기들을 보고 귀여움에 눈 휘어지게 웃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보호자가 과연 알아차릴까 하는 것. 다가가지 않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진짜 미치게 귀여워하고 있습니다. 개를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하고 아기도 좋아하지만 나의 애정의 접점은 '말'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막연히 나의 애정을 받고, 나의 애정을 받음 외엔 무언가를 이뤄내지 못하는 개체. 그리고 그들이 무조건적으로 내게 퍼붓는 일방적인 애정을 좋아한다. 비틀린 감성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지난 토요일 네 명의 친구들과 만났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나를 빤히 보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됐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구를 잘못 만났나?' 딱히 아니야 하며 끝을 흐렸는데 손끝이 조금 저렸다. 알아채서 무안한 건지 들켜서 민망한 건지 잘못짚어 어색한 건지 나는 쭈뼛했고 당연하게도 당신을 떠올렸어. 그런데 웃기지 않아? 나는 그 찰나에도 내가 당신을 잘못 만난 게 아니라 당신이 나를 잘못 만난 거지 않을까 자조했어. 늘 억울해서 머리와 마음을 싸매면서도 나는 그런 걱정을 하더라고. 자조가 습관이 되면 이렇게 무섭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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