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5) 비틀 휘청 차츰

안고 싶은 마음

재이와 시옷 2015. 9. 14. 19:37

 

'품이 그립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외로움의 정의를 몸소 내려본 적 없는 나는 농담으로라도 외롭다는 말을 쓸 줄 모르는데,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인지 '품이 그립네.' 등의 시시껄렁한 말들은 혼자서 툭툭 뱉고는 한다. 짧고 굵었던 여름이 점심에만 머물며 아침과 밤으론 가을이 살며시 앉았다. 그 온도차가 귀엽다. 단출하지만 쌀쌀하지는 않도록 입을 옷을 챙기며 이리저리 뻗어지는 손길이 아직은 재밌다. 이 재미도 조만간 사라지겠지. 완연한 가을이 되면 외투는 꼭 필요한 것이 될 테니까. 그전까지 이 소소함들을 아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오랜만의 글이다.
칠월의 기록 이후 두달이 지났다. 여러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보며 즐거워할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으로 노트북을 열고 그 앞에 앉았다. 온전하지 않을까 봐, 그럴 것이 눈에 선하여 마음이 많이 쓰인다. 상실은 그러하고 상심은 애달프다. 잃는다는 것은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이 고통을 배워가고 있고, 수년이 지나도 학습되지 않는 고통에 이제는 덤덤해한다. 배워서 도착한 곳이 결국 이렇다. 몇 번이고 걸려 넘어지겠지. 고꾸라지고 마음에 상처가 나고 아물기는커녕 수시로 덧이 나겠지. 가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가만 바라보면 된다. 그러다 종종 뜨거운 어떤 품에 모르는 척 슬며시 안기면 된다. 위로는 되지 못하지 구원 역시 꿈꿀 수 없다. 그저 그런대로 그렇게 두면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밤에 한 번, 그리고 팔 월. 두번째 부탁을 했다. 고개 숙여 깍듯이 인사드리고 제 소개를 하고 그 인정 많고 따뜻했던 손, 당신 것으로 덮어 감싸며 꽃길을 함께 걸어달라고. 갑작스러워 놀라셨을 그 심정을 다독이며 다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들어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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