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 163

여름의 경주

내일로 기차여행을 하며 잠시 들렀었던 몇 해 전의 경주. 기차 시간이 빠듯하여 남들 다하는 자전거 빌려타기도 못해보고 삼천원 짜리 우산 꼭지 하나에 의지해서 역 근처를 뽈뽈거렸던 기억. 밥 한끼 먹지 못했고 첨성대 지척으로 가지 못해 먼 발치에서 사진만 몇 장 담았던 것이 고작이었다. 밤의 안압지를 보는 호사는 당치 않고 그곳으로 가는 연꽃길이나 조금 걸었던 게 전부. 그리고 올해 겨울, 약 열흘 가량을 눈이 덮인 경주에서 보냈었다. 무척이나 평화로웠지만 쉬이 밖을 다닐 수 없던 환경에 별장 밖으로 나와 산길을 돌며 콧바람을 들이키는 것에 감사했던 겨울. 그리고 다시 계절이 두 번 바뀌어 여름, 경주를 찾았다. 내가 도착한 것은 11일 월요일. 그 전 주에는 내내 비가 쏟아졌었다고. 의아해하는 것이 당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국내 개봉 전 이미 사람들의 입을 널쭉널쭉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있었다. 수상 경력부터 포스터에 등장하는 익숙한 많은 배우들의 모습에 놀라운 캐스팅이라는 찬사들까지 덧붙어가며. 감독은 이미 여러 작품들로 많은 평가를 받아 온 웨스앤더슨. 가만 보니 이 감독 영화 중 내가 본 것은 이 고작이더라. 그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웨스앤더슨 감독의 신념과 성향이 '역시' 잘 드러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봤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말의 뜻을 바로 알 수 있겠더라. 멀리서 대충 휘휘 본다고만 해도 이 영화가 가진 매력에 빠지기는 쉬울 거다. 그만큼 영화는 사랑스럽다. 감독이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와는 결을 완전히 달리 한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내내 풍기는 이 살그러움, 귀여움, 사랑스러움을 나몰라라 ..

⌳ precipice,/see 2014.03.26

조난자들, 2014

현재상영작 중에서 특별하게 눈에 띄던 영화는 아니었다. 과 사이에서 시간에의 제약으로 를 선택한 후 재밌는 경험을 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튿날이었던 터라 나름 선택에 신중함이 있어야 했다. 원래의 순서라면 에 밀린 을 보는 것이 맞았겠지만 수의 친한 친구가 주인공이라는 점과 독립영화지만 최근 1만 관객을 넘었다는 기사와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까지 들었던 터라 '그래, 을 보자!' 하여 CGV신촌아트레온으로 스쿠터를 타고 달려갔지. 딴 말이지만 스쿠터 오랜만에 다시 타서 너무 신 났다 으어엌. 영화 시작 전 광고가 흐르고 있었는데 소리가 잦아들더니 음소거. 응? 상영사곤가 헐? 하는 때, 내 자리 옆 계단을 내려 가며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인사하는 누구신지..? 알..

⌳ precipice,/see 2014.03.18

몬스터, 2014

생각해보니 작년 봄 쯤이었구나. 영화 에서 이민기의 '현실남친형 연기'를 보며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된 게. 영화 에 이어 김고은이 선택한 영화. 이민기와 함께 살인마와 동네미친년으로 분해 호흡을 맞췄다고 해서 나는 아주 쫄깃한 스릴러를 기대했다. 영화의 줄거리까지는 아니어도 감독의 전작 정도는 찾아 보고 가는 편이라 검색해보니 내가 이 영화를 누구랑 봤었지. 아무튼, 로맨틱코미디와 호러를 결합해 제법 귀엽게 끌어갔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그래,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는 뭐랄까. 음..이 영화를 뭐라고 말해야 하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명한 건, 괴작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이게 어감의 차이가 명백한 것이 '괴작'과 '망작'은 분명히 다르다.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기로 이 영화가 망작은 아니다. 음 아닌..

⌳ precipice,/see 2014.03.18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2014

오스카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의 영광의 자리가 모두 이 영화에서 나왔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오스카 시상식을 먼저 찾아 봤던 터라 '도대체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가 어떻길래 울프의 레오가 상을 받을 수 없었을까. 왜 레오는 영원히 고통받아야 하는가.' 궁금했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자레드 레토는 어디서 본 듯도 한 얼굴인데 낯익지 않아 긴가민가했고. 수입사가 영화 화면비를 거지같이 들여와 개봉 전에 SNS상에서 시끌시끌 말이 많았다. 3월 6일이 공식 개봉일이었고 극장을 찾기 전 CGV측에 전화를 해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수입사 측 공홈에는 명확한 공지가 뜨지 않았기 때문에. CGV측에 전화로 문의한 결과 개봉에 맞춰 정상적인 화면 비율로 상영한다는 확답을 받은 후에 안심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 precipice,/see 2014.03.09

노예 12년, 2014

플랫으로 12년을 산 남자. 하루 아침에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밤에 조용히 잠들지 않아 아빠에게 애정 어린 꾸지람을 듣던 열살박이 딸은 그의 품에 갓난 아기를 건내며 말한다. '제 딸이에요.' 소녀는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가 뒤늦게 돌아와 찾은 자리에는 다른 이름이 하나 더 붙었다. 12년의 세월이 지나 그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이든 아내와 몰라보게 성장한 딸과 아들을 품에 가득 안으며 그는 말한다. '미안하오. 미안하오.'

⌳ precipice,/see 201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