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당신에게 무얼 줄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당신은 아마도 내게 늘 무언가 주고 싶었겠지. 더 주고 싶어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당신이었겠지. 당신이 내가 가진 기억보다 덜 다정하고, 나를 덜 사랑했다면 내가 쥐고 있는 이 미련의 기둥이 조금은 얄팍했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받은 사랑을 보고 내가 건넨 것도 꺼내서 그러모았는데 그게 너무 하찮았어서 나는 이렇게 오래도록 궁상맞은 거지 않을까. 너무 나빴지. 결국엔 다정했던 당신을 탓하고 싶어서 이러는 내가.
오늘의 일정이 스케줄에 등록되기 전엔, 올해는 당신에게 때맞춰 다녀올 수 있을까 다녀온다면 좋을 텐데 하며 건방지게 날짜를 꼽아봤었어. 막상 금요일 휴무가 등록된 걸 보고는 '명절 때문에 스케줄 한 번 어지럽네' 이러고 말았지. 고새 까맣게 잊어버린 거야. 금요일이 당신의 기일이라는 걸. 오늘 간밤에 술기운을 담은 채 느지막이 일어났는데 날짜를 보니 뭔가 이상한 거야. 어 이상하다 이상하다 뭐지. 아 맞네.
열다섯번의 해가 넘어간다는 게.
나 나이를 많이 먹었어. 아무렴 당연하지 15년이 지났는 걸. 당신보다 훨씬 아주 훨씬 어른이 됐어. 당신 스물다섯 살이었잖아. 마흔이 되었겠네. 당신 세상에서는 나이를 안 먹지 않나. 평생토록 스물다섯 살 일 거 아니야. 내가 알고 있는 그 해사한 웃음과 얼굴 그대로. 그래 그거면 됐지. 이젠 무엇도 안 바라. 보고 싶다고 한 번씩 떼쓰는 거야 그럴 수 있잖아 들어주는 것도 아니면서 떼쓰기도 못하게 하는 건 너무 억울하지. 그래서 이젠 무엇도 안 바라. 그냥 그냥 어 그냥 종종 슬프고 종종 나도 알 수 없는 허무에 빠지고 종종 헤맬 뿐이야. 이렇게 한 번씩 편지할게. 이렇게 인사할게. 계속 또 계속. 나중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