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44

'환한 불행'

소설 보다 : 2024 봄 김채연 작가의 인터뷰 중,    제가 말하는 '환한 불행'이란 오랫동안 볕을 받거나 습기가 배어 본래 그 불행이 어떤 색이었든 좀 더 희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낡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빛바랜 것과는 결이 다른 의미이고요. 어떤 불행을 처음 겪게 될 때 그것을 표현할 마땅한 언어를 곧바로 찾기란 어려울 것이고 그러면 일단 가만히 있겠죠.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요. 이것을 '견딘다'라고 표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야, 하고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야 뭐가 뭔지 조금 알게 되는 거예요. 1년이 걸릴 수 도 있는 일이고, 어떤 것은 30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고요. 뭐가 뭔지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앎의 옳고 그름과는 관계없이 비로소 언어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겠죠. 감당해 보겠다..

ordinary; scene 2024.12.16

앞으로 기억 될 십일월은

임시로 저장된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로그인을 했다. 무엇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왕 무엇이 남아있어서 스리슬쩍 몇 줄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띄워진 텅 빈 페이지에 작게 숨을 들이켰다. 아무것도 없네. 그럼 무엇이라도 얼기설기 내가 기워내야 할 텐데 어디 보자 가만 보자 뭐가 좋으려나.    시월을 사흘 남겨두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거의 90일을 쉬었다. 대개 아무것도 안 하고 흘려보낸 석 달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는 상처 입었고 지쳤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낮잠을 자고 짧은 저녁잠을 자고 또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고 잠들지 못하고 어수선하기만 한 꿈을 꾸며 보냈다. 내가 보냈다기보다 그저 사정없이 인정없이 지나갔지. 내게 가장 면밀한..

ordinary; scene 2024.12.02

오 년 그리고 세 번째 그리고 제주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일을 쉬어야지만 심리적으론 그보다 더 여유 있다 느끼는 시간적 사흘의 휴가가 가능하다. 두 사람 다 일을 하고 있대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 두 사람의 환경에선 이 조건이 최선인 것 같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 듯 빠르고 응축해 지나간 사흘이었지만 아쉽다는 마음보단 언제일지 모를 그다음이 그냥 더 기대된다. 그 확신에서 오는 여유 같다. 앞으로도 이 사람과 함께 앞으로의 시간과 생과 삶을 함께 할 거니까.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이번엔 이렇게 지나가도, 다음에 또 그다음에, 우리는 더 더 재밌을 거니까.    2024.08.25 - 08.27

ordinary; scene 2024.08.29

사월 이어 오월 붙여서 유월

4월 어느 날 심야영화를 보러 가는 길. 신호 기다리며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늦은 밤임에도 달이 밝아서인지 강남의 불야성 때문인지 머리깨가 유난히 밝은 것 같아 고개를 드니 마치 거친 붓으로 물감 찍어낸 듯이 저 예쁜 나무와 보름달이 한 칸에 걸려 있었다. 애인에게 물었다. 무슨 나무인지 아느냐고. 물어놓고 내가 맞춰보겠다 했다. 책에서 봤었는데, 책에서도 헷갈리지 말라고 구분해 내는 암기편법을 일러주었는데, 그게 무슨 책이었는지 저 나무는 뭔지 다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튼 예쁘다는 건 알았어.이 날 본 영화는 였고 이 시리즈물을 볼 때마다 두 개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나, 잘 싸우려면 맷집이 좋아야 한다. 둘, 나도 슈슈슉 싸움짱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안 되겠지 나는 쫄보니까(...)     매출감소..

ordinary; scene 2024.06.18

이제는 그렇게 해, 나랑 그렇게 해

'태어난 날이 생일이잖아.' 작은 애정과 관심이 고파 찾아낸 방법이라는 게. 그때의 내가 꾸며내고 선택할 수 있던 최선이면서 비열하고 구질구질한 가짜 진실. 거짓이라 하기엔 아주 틀리진 않았고 진실이라 하기엔 꾸며내긴 했으니까. 그래서 이리도 오랫동안 묵혀 온 내가 가진 가짜 진실 하나. 내 생일은 11월 27일이 아니야. 나는 1월 4일 오후 두 시 반에 태어났어. 나는 1월 4일에 태어났어. 날 생 날 일. 내 생일은 1월 4일이야. 타이핑하는 이 순간에도 눈 아랫뼈가 저리다. 누구도 끈질기게 물어봐 준 적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래, 끈질기게 물어왔다면 나는 실토하듯 말했을까. 그때의 내가 그걸 바랐을까. 아니지 않을까. 처음 입에서 터져 나온 그날 이후 나는 오래오래 그걸 진실인 양 손바닥에 올려..

ordinary; scene 2024.05.09

이른바, 일상

어렸지만 어리다 여기지 않았던 풋내기 때에도 한 번 이상 바랐을 요즘의 내 모습. '우리'로 시작하는 모든 것들을 가꾸고 정돈하는 데에 빈 시간 모두를 쏟는다. 그 좋아하는 옷도 신발도 아무튼 간 나를 꾸미는 사치품들은 거의 사지 않고 쇼핑몰 장바구니엔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만이 가득이다. 내가 알고 짐작하던 내 모습보다 더 유난하게 요즘의 일상에 나는 열정적이다. 그래서 깨닫는다. '아, 내가 많이 바라왔구나 지금을.' 이른바 [부사] 세상에서 말하는 바 유의어 소왈 소위 소칭

ordinary; scene 2024.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