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짜깁기하여 그럴싸하게 기워놓을 수 있을만큼으로 다분히 여러 일들이 있던 오늘까지의 유월이었다. 오랜만인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가까운 친척언니의 결혼식이 있기도 했고,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냐며 되려 설득하기 바빴던 이기적인 나를 또 한 번 지켜봐야했고, 업무로 수차례 바쁘기도 했고, 강촌으로 놀러가 라이더의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어떻게 지냈어?' 라는 물음이 기습적으로 쳐들어와도 "어, 나름 바쁘게 지냈어." 라고 할 수 있는만큼.
뭐, 딱 그만큼.
벌이가 크지않으니 씀씀이 역시 클 수 없다. 버는만큼 쓰고, 쓰는만큼 벌어지는 삶인거다. 아주 오래전부터 하향조정된 신용카드의 짧아진 숫자들을 보며 이게 지금 어떤 삶인가 하는 울화가 불쑥 치밀었다.
월 30만 원 내에서 조정되어지는 뻔한 패턴이었다. 조금은 넘어설 수 있지만 위협적이어서는 안되었고, 적게 쓸수도 있었지만 그건 어딘지 존심이 상했다. 그래, 나는 돈도 허영으로 쓰는 사람이니까.
7월에 여행 계획이 있어 아무래도 신용카드가 하나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국민은행에 카드 신청을 했는데 연락 한 통 없이 그대로 반려되었다. 말그대로, 퇴짜를 맞았다. 13개월 동안 내 명의로 된 급여 통장에 그래도 여섯 자리에 숫자들이 꼬박꼬박 찍혀 들어왔는데, 사용 중인 신용카드 연체 기록 없이 퍼가실대로 퍼가시라며 그렇게 안자리 다 내주었는데. 학자금대출과, 아부지 몰래 엄마를 위해 받았던 저축은행 대출금이 발목을 잡았다. 아주 우악스럽게.
손을 휘저을새도 없이 큰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는데 그 충격이 이미 예견된 것인 듯, 이것이 네 삶이라는 듯, 사위에서 비웃음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카드 신청을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요"
'네 고객님, 확인되시는 결과로는 카드 신청이 안되는 걸로 나오시네요'
"아- 그럼 제 신청이 반려된 건가요?"
'네 고객님.'
님자를 붙여가며 내게 분명 말을 높이고 있었는데, 수화기를 들고 있던 나는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네가 그렇지 뭐, 주제에.' 라는 귓말이 보이지 않는 현실의 채팅창에서 쏟아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통신이 가능한 전국적 범위 안에서 신용적으로 신뢰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종이 혹은 화면에 자리할 그 잔인함을 꾸역꾸역 마주봐야하는 것이 여태까지의 내 삶, 그리고 어쩌면 오래도록 지속 될 앞으로의 내 삶이겠구나 생각하니 되려 웃음이 터졌다. 결국 이런거잖아.
왜 매번 같은 좌절을 맛봐야하는 지 도통 삶에 애착이 가지 않는다.
별 볼 일 없다. 나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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