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분명 존재하는 것처럼, 설명되어 지고도 그 명분을 알 수 없는 것들 또한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이 말이 되었든, 감정이 되었든, 사건과 사실이 되었든간에. 요즘은 모든 것들이 세모다. 혹은 쩜오(0.5) 또 혹은 그냥 물음표. 더 가혹해지자면, 공란.
혼자일 수 있는 나의 집을 그토록 원했던건 사실인데, 골라내어지는 못난 쌀알처럼 이불 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는 것은 또 싫었다. 반전라의 상태로 거실에 펼쳐진 이불을 가로질러 가만 누워있다보면 인간이 갖는 궁극적인 외로움의 기원은 무엇일까 라는 개똥같은 고찰을 시작하게되곤 한다. 개똥같다 정말.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팠으면 좋겠다는 열망도 들었다. 진짜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앞섰고 아플리가 있나 라는 비웃음도 흘렀다.
그런데 정말 아파져 버렸다.
팔과 다리, 몸통 등엔 열이 피지 않았지만, 그 열이 쇄골부터 목을 타고 귓바퀴까지 뜨겁게 눌러앉았다. 이마가 뜨거워지고 눈꺼풀을 가누기 어려워질만큼 기력이 바닥에 늘러붙어갔다. 욱신욱신하는 몸둥이를 가눌 길이 없어 '진짜 이렇게 돼버리다니 어쩜' 하며 코웃음이 터졌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 진다더니, R=VD니 어쩌니 하던 못미더운 설파가 이렇게 효력을 뜬금없이 내뿜어도 되나 싶었다. 다 내려지지 않은 블라인드 틈새로 아침 해가 비질비질 들어차고 있었다. 거실 바닥엔 여전히 반전라의 내가 비실비실 웃으며 열과 싸우고 있었다. 꼴사납게.
최근엔 나의 성품과 씨름을 하느라 정신이 바쁘다.
네 옆에 있어주겠다는 낭만적인 말을 들었을 때엔, 이 세상 처음의 언어였던 것처럼 감격이 발화하는 듯 했는데. 며칠이 지나지않아 자주 울어대는 핸드폰이 성가셔진 것이 자뭇 명명한 사실이 되었다. 잠이 들었다는 개똥같은 거짓말을 늘어놓고 5시간동안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본인 잇속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는 말이 오갔다. 본성이 천사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욕심 한 점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게 아니라, 그 욕심 한 점도 잘 감추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 따라 붙었다. 그렇게 날카롭고 고고한 인생은 아니지 않겠냐 비스듬히 말을 갖다대었지만 '아직 어려서 그래' 라는 타이름이 맞붙었을 뿐이었다.
다정하다는 말이 참 좋은데 정말 내가 다정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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