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걸 써야 하지 책임도 의무도 아닌 어떤 강제로.
당신을 적다가도 금세 지우고 또 올려 두었다가도 문질러내고.
그런 낮과 저녁들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텅 빈 화면이야.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쓰지 못한 채 내게로 다시 흘러 고여버린 짙푸른 마음들.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절망은 마치 그늘 한 점 없이 트인 도로 같아. 절망의 온도를 온몸으로 때려 맞고 눈물을 뺏기고 말라죽는 그런 죽음의 도로 한가운데 말이야. 숨을 곳이 겨우 나의 두 손바닥뿐이라는 비린내 나는 진실이 오늘도 지겹지. 막상 숨겨준 적도 없으면서. 내가 나를 안아준 적이 있었나. 등 떠밀어 종용했지. 아파도 된다 그 명분 뒤에 비겁하게 숨어있으라고. 단 한 뼘도 자라지 못한 것 같아. 단 반 폭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예뻤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못 되었더라도 당신 혼자인 채로도 아주 예뻤을 거야. 반짝반짝했을 거야 당신.
그래서 나는 더 아쉬워. 갖지 못한 보지 못한 당신의 시간이 사무치게 아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