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2024 봄 김채연 작가의 인터뷰 중,
제가 말하는 '환한 불행'이란 오랫동안 볕을 받거나 습기가 배어 본래 그 불행이 어떤 색이었든 좀 더 희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낡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빛바랜 것과는 결이 다른 의미이고요. 어떤 불행을 처음 겪게 될 때 그것을 표현할 마땅한 언어를 곧바로 찾기란 어려울 것이고 그러면 일단 가만히 있겠죠.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요. 이것을 '견딘다'라고 표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야, 하고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야 뭐가 뭔지 조금 알게 되는 거예요. 1년이 걸릴 수 도 있는 일이고, 어떤 것은 30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고요.
뭐가 뭔지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앎의 옳고 그름과는 관계없이 비로소 언어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겠죠. 감당해 보겠다는 의지라고 해야 할지 결기라고 해야 할지 그런 알 수 없는 것이 생겨나 불행에 발이 걸렸지만 고꾸라지지 않겠다, 감당해 보겠다, 아니면 고꾸라져서 감당해 보겠다. 와 같은 다짐들을 하며 혼자 그러고 있는 동안 알고 보니 그 불행도 계속 함께 있었던 거예요.
불행이라고 가만히만 있었을까 싶어 들여다보면 조금씩 변한 것이 있고 그 변화가 저에게는 좀 더 희어진, 어느 날 제 방에 함부로 들어왔지만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기에는 새삼스러워져 여기서 지내, 하게 되는 존재로 감각되는 것 같고요.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라는 말이 이렇게 사무칠 일인지. 그렇게 어리둥절한 채로 그 시간들을 견디고 결국엔 내 안 한편을 내주게 되는 것. 그렇게 되어버린 것.
참 오늘 유달리 엄청 보고 싶네.
당장 떠올려지는 당신 얼굴이 개구쟁이처럼 잔뜩 찡그리며 웃는 얼굴이어서 나는 이게 참 다행이다 싶은 거 있지. 그 사진 속 당신 얼굴이 내가 곧장 떠올리는 얼굴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웃고 있어서. 당신이 환하게 웃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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