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갖고 있는 애틋한 기억들이 많다.
더위와 추위 모두 잘 타는 극성맞은 성질의 몸뚱이지만 그래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입김이 하얗게 뿜어지는 계절, 겨울이 좋다. 발이 꽁꽁 얼어 걷는 걸음마다 오독오독 발가락이 부숴지는 것 같은 낯설 질감에 놀라다가도, 그 질감을 또 어느 계절에 느낄 수 있나 싶어 양껏 쌓인 눈에 발을 더 들이밀기도 한다. 그렇게, 미련하지만 사랑하는 계절이 겨울이고, 그 시기를 함께 지나가는 11월을 사랑한다.
나의 생일이 있고, 12월엔 당신의 생일도 있고, 해를 넘겨 1월엔 당신의 자리 또한 있다. 몹시 춥고 맹렬한 이 계절에 나의 행복과 절망이 함께 놓여있다. 증오하지만, 더없이 껴안을 수 밖에 없는 계절.
이 때가 기점이었나 싶다. 가죽가방을 잘 못 들겠다. 계절을 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합성피혁이든, 천연가죽이든 간에 그냥 캔버스백이 좋다.
아, 스물여섯 직장인의 오피스룩이 맞습니다. 패딩조끼와 후드집업ㅋㅋㅋㅋ
다른 날, 아마도 토요일.
두툼이와 쇼핑을 하고 강남에서 영화 <토르>를 보았던 날.
별수롭지 않게 셔츠와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겉엔 패딩조끼를 입어 둘이 옷을 맞췄다.
내 에코백 안에는 털모자가 들어있고.
임여사 앵클부츠와 임여사 체크셔츠.
종종 낡은 것들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 그것들이 가진 고유한 주름과 색감이 좋고.
앞머리를 내리고, 옆으로 머리를 쓸어내는 버릇 때문인지 왼쪽 관자놀이에
어마어마하게 아픈 뾰루지가 났다. 진짜 꾸욱 눌러보면 땐땐해가지고 쉽게 짜지지도 않고
아무튼 막 되게 아픈 뾰루지. 어느날 밤 보니 꽤 여물었길래 으읔! 짜내고 소독하고
안티프라민 바르고 그 부위가 너무 커 습윤밴드는 못 붙이고 대일밴드 잘라 붙였다. 흑흑
스물 여섯 직장여성의 오피스룩이 맞습니다 여러분.
저 패딩조끼는 에잇세컨즈에서 29,900원에 샀고
안에 입은 민트색 맨투맨은 탑텐에서 9,900원에 샀고
그안에 입은 형광색 무지티는 또 에잇세컨즈에서 9,900원에 샀다.
999 돋네 증말ㅋㅋㅋㅋㅋ 모두 다른 날에 샀다 심지어 계절도 다르게.
저 뉴발은 참 튼튼하게 3년째 신고있네 그러고보니
최근 두 달 동안 육회를 진짜 많이 먹었던 것 같다.
1차에서 고기를 먹고 나면 2차는 거의 90퍼센트 육회.
술을 마시다보면 나중엔 시원-하고 개운-한 게 먹고 싶어지는데,
전에는 회를 많이 먹었다면 요즘엔 육회를 먹는다.
가죽가방을 쓰기 좀 그렇다고 하는 여자의 이 안주 모순. 예.
6호선 동묘앞역. 환승하는 지점에 있는 계단.
이 계단 내려갈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건데 손잡이에 엉덩이 걸치고
쭈욱- 내려가면 얼마나 재밌을까 혼자 속으로 아주 리얼하게 상상한다.
나 초딩 때 그거 진짜 잘했는데.
드라이피니쉬캔을 사면 저렇게 윗 꼭다리에 피너츠를 함께 주더라. 대신에 ml 큰걸로만.
굽네치킨이랑 먹으려고 맥주 사러 갔는데 의외의 득템이어서 네 캔 야무지게 사왔지 또.
'마녀사냥'을 보며 먹는 치맥이란.
뽈이 연애를 한다. 써글년. 늦여름 나와 소주를 먹으며 연애세포가 다 죽었네 마네 하더니만,
어찌 나보다 먼저 연애를 할 수가 있어! 내가 이러니 술을 못끊지! 으앍!
애인 소개시켜준다고(1콤보)
인천으로 오라고(2콤보)
심지어 일요일에(3콤보)
근데 나는 또 갔어. 아우 호구도 아니고. 그래도 어쩌겠어.
어떤 녀석인가 얼굴도 보고 믿음직스러운가 재보기도 하고 인정의 술잔도 부딪혀주고 와야지.
저녁 약속 가기 전에 들른 내가 좋아하는 구월동 '참새네'
군인 뽈에게 편지 써준다고 이 나이에 우표도 저렇게 사서 필통에 넣고 다녔는데.
이 년이 내게 흑흑흑
잠자는 임여사 옆에서 조곤조곤 읽는 페이펄
안보윤의 장편소설. 읽는 동안 머릿속에 그림이 쉽게 그려져 제법 빨리 읽었다.
어려운 어휘가 없어서 이전에 읽었던 안보윤의 소설에 비해선 가볍게 읽었다.
띠지를 벗기면 예쁜 보라색의 양장본이 똿
11월 20일 부로 베짱이가 되었다.
퇴사를 며칠 앞두고 통합으로 한 팀이 된 대리님이 책을 선물해줬다.
다이어리를 꼼꼼히 쓰고 종종 점심시간에 사무실 의자에서 책을 읽는 나를 보고
엄청 의외라 생각했다던 대리님은, 자신이 재미있게 봤던 책이라며 회사를 나가서도 너는 잘할 것 같다고
걱정없으니 네 말마따나 마음껏 놀라고 했다.
내 취향의 책은 아니라 아주아주 훗날에 펼쳐볼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예쁘다.
내 생각을 스스로 떠올려주고, 무엇이 좋을까 짧지만 고민하고, 그것을 건내며 예쁜 말까지 보태는 그 전체의 마음이.
우리 유통사업팀 일원으로 하는 마지막 술자리
팀장님이 좋아하는 와라와라에서ㅋㅋㅋㅋㅋ 이날도 어김없이 술잔을 주고받다보니
약간 야한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 여성분이 팀장님에게 너무도 자연스레 말을 걸으셔서
되려 팀장님의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움과 사과는 내 몫이었다는 그런 이야기.
수박이가 영수증으로 접어준 학알. 올ㅋ
우리집 커피서랍
침묵이 답이 되어야했던 때.
인연을 하나 잘라내야했던 날의 마지막 술자리
27일. 내 생일.
당신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헌혈을 했다.
스물 여섯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숫자초 두개를 골라왔을 것이 맞을텐데
어째서 나는 환갑도 넘긴 62살 생일을 축하받는가. 나의 꾸러기주정뱅이 친구들의 작품.
심지어 62살 초에 불을 붙이고 술집 아르바이트생을 호출해 생일축하 노래를 틀어달라했다.
당황한 알바생이 눈을 크게 뜨자, 직접 허밍으로 노래를 알려주며
'이 축하 노래 틀어주세요! 술집에서 원래 틀어주잖아요!'
알바생은 카운터로 돌아갔고 멜론에서 노래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 그 술집은 원래 그런거 틀어주는 곳이 아니었던 거야 평소엔 음악도 안 나오는 곳인데(..)
조금 작은 소리가 술집에 퍼지기 시작했다.
해피벌스떼투유! 해피벌스떼투유!
아 자랑스러운 나의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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