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삼월에 적는 이월의 일들

재이와 시옷 2022. 3. 12. 18:16

 

 

 

 

01. 1일인지 2일인지 어어?.. 늘 헷갈려하면서 2일에 미현이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웬일로 기억하냐며 되려 기특해하는 답장을 받지. 맞아 미현이 생일은 2일이었지 맞췄다 으쓱하다가도 내년이 되면 똑같이 헷갈려하다가 문자를 보내겠지.
생일 축하 식사 자리를 여의도 아웃백에서 만들었다. 4월에 출산 예정인 미랑이는 요즘 시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아쉽지만 참석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안내받은 예약석으로 가니 친구들과 미랑이가 함께 앉아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내 생각보다, 또 친구들의 생각보다도 더 나는 많이 놀랐다. 그리고 반가웠다. 예상보다 너무 기뻐하는 나를 보는 미랑이의 표정이 좀 미심쩍어 보였어. 의심을 하더라고?ㅋㅋ 반가워했다고 의심을 받다니. 
여느 때처럼 많이 먹고(단 시간에) 응축된 이야기들을 나누고, 많이 웃다가 무사 출산을 기원하며 피주머니 예약을 당한 후에 더 많이 따뜻해지면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아니면 5월에 미랑이 없는 미랑이 생일잔치를 해도 될 테고. 곧 엄마가 되는 친구를 바라보는 마음이 어딘지 뭉클했어. 내 친구가 엄마가 된다니. 세상에나. 물론 이런 생각을 보이는 반응으로 내비치면 친구들이 많이 놀란다. 철 들은 건지 도대체 왜 저렇게 따뜻하게 구는지 모르겠다면서. 무슨 꿍꿍이냐며 또 의심을 받지. 내가 살아온 삶 도대체(...)

 

 

 

02. 콩이와 나는 좋아하는 해산물의 가짓수가 적은 편이고, 특히 내가 입맛이 까다로운 반면 먹고 싶은 것은 뚜렷해서 메뉴 선정에 늘 곤욕을 치른다. 나 말고 콩이가. 그럼에도 늘 찰떡같이 맛있는 곳을 찾아오는 콩이의 노고에 오늘도 박수. 아귀찜을 먹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 생태찜을 먹었다. 막걸리를 곁들이고 비빔냉면까지 먹었지. 다른 음식들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 생선요리를 먹으면 콩이가 늘 살을 발라준다. 가시를 골라내고 내가 싫어하는 껍질을 떼서 하얗고 뽀얀 생선살을 내 그릇에 차곡차곡 포개 놓는다. 진짜 사랑스러워. 

 

 

 

03. [3월의 먹기록. 시간순]
두부전문점 사랑해. 콩이 직장 근처에 두부전문점이 있다고 해서 콩이와 함께 갔다. 시킨 요리들이 나오기 전, 기본 차림으로 따끈한 두부 썰어 접시에 담아주시는 거 진짜 좋다. 거기에 막걸리 이미 한 병 비우고 차례로 상에 내어지는 요리들 하나하나 맛보며 맛있다고 어깨 춤추다 보면 막걸리 서너 통은 금세. 주말에는 안 여는 곳이라 콩이 월차인 날에 또 오자고 약속했다. 
돼지갈비를 5시에 먹고 7시에 근처 호프집에 가 2차로 치맥을 먹는 저녁도 있었다. 두 사람의 소울푸드 하루에 다 조지기.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좋은 횟감을 먹어 온 콩이는 우리의 외식메뉴 중 특히 회에 대해서 엄격한 편이다. 엄격하다는 말은, 잘 안 먹인다는 얘기지. 둘 다 기름기가 많은 생선은 안 좋아하고 담백한 흰 살 생선을 좋아한다 특히 내가. 광어 우럭 사랑해. 아무튼 콩이의 지인분 중,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잡은 생선을 서울에서 장사하는 아들에게 보낸다고 해서 추천받고 그 매장을 찾았다. 합정에 있는 추자로 557. 혹시나 하고서 예약을 했는데 안 했으면 마냥 기다릴 뻔했다. 오픈한 지 30분밖에 안됐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대부분의 테이블이 차 있었고 공석들은 모두 예약석이었다. 구성이 마음에 들어서 3인 이상이 시키는 듯한 세트를 주문했는데, 돔베고기부터 모둠회와 조기구이에 탕까지 아주 알차게 맛있게 먹었다. 콩이는 모든 술을 마실 수 있지만 나는 소주는 안 먹기 때문에 우리가 반주로 곁들이는 건(곁들인다기엔 좀 많이 마시는 편이긴 하지만) 대부분 청하 혹은, 나는 맥주에 콩이는 처음처럼으로 각기 다르게 마시거나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는데 요즘 우린 일품진로에 빠져있다. 토닉워터랑 레몬 슬라이스에 얼음 많이 해서 일품진로 한 병 섞어 마시면 딱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다. 너무 맛있어 너무 좋아. 그래서 이날도 다른 때였다면 청하를 마셨겠지만 일품진로가 메뉴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주문을 했다.

 

 

 

04. 명백하게 부당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사안에 대해 열을 올려가며 소중한 에너지를 엄하게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밥도 잘 먹고 더 잘 자야지 또 앞으로 있는 일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그래서 어제도 잘 자고 잘 먹었다고 덤덤히 얘기하는 국가대표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아간다는 건, 전진이 아니어도 일시 멈춤이어도 그만두지 않으면 괜찮은 거라고. 위로까지는 아니고 그냥 한 번 더 나의 한량 소신에 힘을 보탰다. 

 

 

 

05. 세상엔 맛있는 게 많고 그 맛있는 것과 술을 곁들이고 그 자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채워주고 있다면. 살이 찌는 건 당연한 게 아닌지. 내가 왜 이 논리에 반박 증거를 찾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야. 아니 당연한 거를 왜 부정해야 하냐고. 기분 나쁘게 붓는 몸이 싫어서, 가볍게 에쁘게 내가 좋아하는 옷을 걸치고 연인과 함께 살랑살랑 걷고 싶어서, 그래서 운동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다. 운동은 꾸준히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우리 고인물 헬창 겸 어르신 겸 나의 연인께서, 내가 지킬 수밖에 없는 거래를 걸었다. 약속한 열흘 동안 하루라도 운동을 빼먹으면 현금 10만 원을 본인에게 상납하기. 벌금. 나 같은 사람은 잘했다고 보상을 주는 건 동기를 자극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 중 절대 뺏기고 싶지 않고 뺏길 수 없는 것을 조건으로 걸어야 한다고 했다. 백만 원도 아니고 십만 원이란 금액이 일순 좀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나는 콩이에게 10만 원을 절대 주기 싫어서 일이 고돼서 너무너무 피곤한 날에도 부득불 운동을 했다. 내 방에 요가매트 깔고 홈트 유튜브 띄어놓고 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헉헉대며 운동을 하거나 미세먼지가 약한 날을 골라 집 바로 근처 내천을 달렸다. 10만 원도 지키고(아무도 뺏어가진 않았지만 내겐 지킨 것이다.) 체력도 미미하지만 끌어올렸다. 3월에도 꾸준히 해야지. 

 

 

 

06. 은영이가 결혼을 했다. 당일에도 계속 얼떨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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