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이월에 적는 일 월

재이와 시옷 2022. 2. 1. 19:59

 

 

 


01.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서른다섯이라니 멋진 걸.

 

 

 

02. 아귀찜에 막걸리를 먹었고, 양대창과 청하를 마셨고, 3차 부스터 백신을 맞고 돈가스를 먹었다. 꾸준히 가로수길 테일러 커피에 가서 커피와 파이를 먹었고, 또 꾸준히 배달치킨을 먹었다. 돼지갈비에 막걸리를 마시고, 문어숙회에 고소한 두부전과 청하를 왕창 마셨다. 1월 주말의 우리 먹기록.

 

 

 

03. 스트레스 탓인지, 부스터 백신 탓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시기상 두 가지가 모두 맞물려 나는 1월의 생리를 건너뛰었다. 주기가 규칙적이던 내겐 불편감만 가득하다. 약한 pms 증상을 50일 내내 겪는 기분이다. 엿같다.

 

 

 

04. 만 3년을 채운 에어팟이 이생과의 연을 놓으려는 듯 빌빌거린다. 나의 출근 시간은 도어 투 도어 기준 40분. 6호선 전철을 타고 대흥역에 내려 공원을 가로질러 매장을 향해 8분을 걸어간다. 대흥역 4번 출구를 벗어나면 에어팟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풀충전을 해도 충전율이 수치상으론 90퍼센트가 넘어도 기가 막히게 30분. 근무시간 동안 다시 풀충전하고 퇴근길에 켜면 역시나 기가 막히게 30분. 가로수길 애플 매장에 가서 에어팟 프로 사주려던 콩이의 계획은 방문 예약을 하지 않아 무산되었고, 안그래도 아이폰14를 기다리는 내게 지금 에어팟 프로 구매는 어딘지 아까워서

 

 

 

05. '내가 사려고 했지만 이렇게 된다면 콩이에게 사달라고 하자'의 각오로 이북리더기를 강제 선물로 받아냈다. 그는 돈을 쓰고도 돈 쓴 맛이 나지 않는다며 내켜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나는 대만족 중이다.
갖고 있는 종이책 권수도 많고 여전히 종이책 사기를 좋아하지만 부피와 공간의 부담이 있고 결정적으로 핸드폰으로 이북을 좀 봤더니 시력이 맛이 갔다. 그게 느껴질 정도까지 와서 리더기를 냉큼 받아냈다. 크레마S를 샀다.

 

 

 

06. 안경을 맞췄다. 나의 안경잡이 역사도 제법이긴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을 하며 안경잡이를 벗어났다. 공부하고 책 읽고 영화 볼 때만 안경을 쓰는 멋 부리는 안경잡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테부터 렌즈까지 싹 다 취향으로 온전한 내 안경을 맞췄던 게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친오빠가 브랜드 안경을 새로 맞출 때나 선심쓰 듯 쓰던 안경테를 물려주면(?) 거기에 내 도수렌즈만 바꿔 넣고 그것을 썼다.
사용 만기일이 가까워오는 재난지원금을 쓰기 위해 날을 잡고 작정해서 구리시 안경점에 갔다. 일반적인 난시 수치를 한참 벗어나는 기이한 시력의 나는 가장 값싼 렌즈가 10만 원이라 25만 원 재난지원금에 돈을 더 보태어 내가 고른 브랜드 안경테에 어쩜 시력도 이상하지에 걸맞는 렌즈를 맞췄다. 십여 년 만에 처음 가져보는 온전한 내 안경이었다. 렌즈 제작에 시일이 소요돼 며칠 뒤에 택배로 받아 본 안경을 조심스레 닦고 처음 쓰고 외출을 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생각보다, 너무나,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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