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허무의 성

재이와 시옷 2022. 4. 18. 18:42

 

 

이야기를, 문장을, 글을, 나를 적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띄워야 할지 막막해서 지나간 날들의 글들만 괜히 고심 고심 들여다보고 있다. 마감기한을 받은 것도 아니고 돈 받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토록 오랫동안 무언가를 썼으면 좋겠다는 갈망을 갖는 것이 너무나 자기변명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선망은 수차례 했었으나 내 글을 똑바로 읽는 타인의 그 거리가 부끄러워 자랑스레 꺼내보여준 적도 없고 남의 공간에 역 도둑질이라도 하는 양 나의 글을 던져 놓고 괜찮게들 보고 있는 건가 기웃거리기만 하는 것이 몇 해 째인지. 오늘도 여전히 이 블로그의 오래전 글들을 역순으로 읽어오며 10년도 더 된 낡은 활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쓰지 않고 생각도 않고 있으면서 오늘도 방구석 허세 놀음이다. 

 

 

잃어버리지 않으려, 잊지 않으려 오기와 어쩌면의 독기로 기록하던 당신을 내가 이제 느슨히 쥐어서. 그래서 더 무엇을 쓰고 싶은지를 모르는 것 같아. 영영 흘려보낼 순 없다는 걸 알아서 이제는 나의 악력으로 스스로를 해치지 않게끔만 기억의 손에 힘을 실었는데 그 헐거운 틈으로 흐리멍덩한 사념들이 잔뜩 끼었어. 선명하지가 않아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나를 이루던 건 언제나 당신이었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를 허물고 다시 나를 지탱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당신이었는데 그게 허무의 성이라는 걸 인지하고 나니까 너무나 황망해. 

 

 

어쩌면 좋을까. 
무엇이 쓰고 싶을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