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4) 그렇게 그런 일들

과잉의 십 이 월

재이와 시옷 2014. 12. 28. 01:59



십 일 월엔 생일이 있었다. 달이 끝날 즈음 날이 위치하다보니 자연스레 뒤늦은 축하들을 달을 넘겨 받곤 했다. 올해는 유독 받은 것들이 많은 생일을 보냈다. 생각도 못한 마음들이 정직하게 또 예쁘게 다가왔다. 그래서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했다. 지난 이야기들을 남겨놓은 사진들과 함께 기록해둔다. 나의 십 이 월이 이렇게나 과잉이었다고. 넘치듯 좋았노라고.



딸기맛 기호식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딸기는 그저 딸기일 때 아름답다. 맛도 제일 좋고. 겨울에 생딸기를 원없이 먹는 사람만큼 부러운 사람이 또 있을까. 아무튼 딸기맛 우유라니, 나로서는 일 년에 두 번이나 찾아 먹을까 한 그런 음료다. 이 날은 임여사와 아침 목욕을 마치고 먼저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사우나에 이날 따라 뚱땡이 바나나 우유는 없고 뚱땡이 딸기맛 우유만 있더라. 하는 수 없이 사 먹었는데 역시 호감의 맛이 아니었다. 




어떤 책의 첫 장이었더라. 또 기억이 나지 않네. 그만큼 이전에 찍어놓은 것이었는가 보다. 바닥에 책들이 어질러져 있다. 읽어질 책들과 읽은 책들이 비등한 비율로 뒤섞여 있었는데 요즘엔 확연히 읽어질 책들이 우세다. 책을 안 읽고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문장들과 멀어진 요즘이다.




11월 27일. 그러니까 나의 생일 그 밤. 일을 끝낸 수박이를 약수에서 만나 불족발을 먹었다. 남은 불족발을 포장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렇게 덤덤하게 허나 달이 무척이나 밝았다. 정말이지 그 밝음이 곧 선물같이 느껴질만큼. 이제 드는 생각이다. 어쩌면 그 밝음이 당신이 주는 선물이었다고 착각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생일 선물. 안경을 잃어버렸더랬다. 낯선 곳에 두고 왔다. 다시 찾아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잃어버렸다. 바로 보는 것에 대해 감흥이 없는 난 한동안 예전에 쓰던, 렌즈에 흠집이 잔뜩 난 뿔테안경을 대안으로 쓰고 있었는데 새 안경이 생일 선물이 되었다. 안경을 선물 받다니. 기분이 묘하다.




생일 선물. 강남 알라딘에 잠시 들렀는데 눈에 띄었다. 웬일로 문학동네시인선 시집 두 권이 시 부문 서가에 꽂혀 있길래 놀라 집어 들었는데 이미 갖고 있는 것이었다. 아쉬움으로 내려 놓고 이것을 집어 들었다. 내게 주는 선물. 기형도의 문장은 아름답다. 처연하지만 아름다워. 물론 이것도 읽어질 책으로 나의 방 바닥의 한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생일 선물. 디올 립글로우를 잃어버렸다. 싱가폴 여행 다녀온 친구를 통해 면세점에서 구입한, 올블랙 케이스에 제법 멋이 나던 것이었는데 코트 주머니에 엉거주춤 들어있다가 택시에 떨구었는지 집에 와보니 없었다. 같은 주머니에 들어있던 유리아쥬 립밤은 온전한 것을 보며 '에이 차라리 립밤을 잃어버리지. 이게 훨씬 싼건데.' 라는 생각을 했다. 잃음에 차등을 두는 내가 간사하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무튼 립스틱을 바르지 않는 나는 처음으로 샤넬의 것을 사 보았다. 발색은 약하면서 촉촉함이 있는 루즈코코샤인. 넘버링 네임은 샹스. 




생일 선물. 정말이지 뜻밖의 것. 이 글에는 사진이 없지만 용히가 알려준 어플을 통해 배송료 포함 2,650원의 가격으로 머플러를 하나 샀더랬다. 사용 가능한 마일리지 만 점을 받기 위해선 잠시 카카오톡 연동이 필요해 무척 오랜만에 설치를 하고 잠시 가입했다. 그 찰나에 가게 동생이 대화를 붙여왔는데, 내일 가게에서 보면 서프라이즈 할 것이 있다고 잔뜩 콧힘을 주고 말해 무엇인가 조금 궁금해만 했는데 다음 날 출근을 하니 본인 사물함에서 저 작은 쇼핑백을 꺼내며 '언니, 선물' 하고 내게 건내주었다. 정말 생각도 못한 것이어서 많이 놀랐고, 많이 고마웠다. 이 반지는 술 마시고 잃어버리면 안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지금 내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다.




생일 선물. 가게 오빠와 생일이 같았다. 각자의 날을 보내며 축하 문자를 보냈는데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 때만 해도 가장 갖고 싶던 무난한 선물이 짙은 초록색의 머플러였다. 그래서 그것을 말하고 나도 문자 뿐이 못했으니 예잇 퉁이다 하려 했는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밖에 나왔는데 머플러 말고 갖고 싶은 것은 무어냐며. 2,650원 짜리 짙은 초록색 머플러를 산 후여서 그렇다며 장갑이 필요하다 했다. 만 원 짜리 니트 터치 장갑을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와있다던 밖이 백화점이었다. 




생일 선물. 12월 하고 1일 밤에 전화가 걸려왔다. 밤 더 늦은 새벽이었다. 뭐하고 있느냐는 빤하지만 어딘지 미안한 기색이 묻은 목소리를 먼저 알아채고 '생일을 까먹어놓고 이리 어물어물 넘어 가려 들어?' 웃음으로 선수를 치니 27일을 놓치고 나니 미안해서 더욱 남은 11월의 며칠은 전화 할 수 없었다고. 늦은 마음도 괜찮으니 선물을 달라 우겨보았다. 옷을 사줄까 화장품을 사줄까 며칠 고민했다는 너의 곤란이 귀여워 갖고 싶은 시집이 있다 말했다. 이윽고 만나 서점에 함께 갔고 너는 내가 집어든 시집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다시 돌아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늦었지만 생일 선물입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또 '네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다. 




생일 선물. 할매와 혜자에게 받는 현금 선물. 향수를 살까 속옷을 살까 몇 몇 후보들을 두고 고민하던 차에 몇 번의 음주가무 비용으로 야무지게 탕진되었다. 전부를 쓴 것은 아니고 절반 정도?.. 남은 절반으로 니트와 원피스를 샀다. 나는 단순하고 깔끔한 것. 괜히 영어로 불러 심플&모던을 입는 옷의 기본으로 삼기에 이번에도 깔끔하게 스트라이프가 스티치로 들어간 원피를 샀고 마음에 들어했는데 이를 본 수박이는 나의 옷의 모토를 무시하고 '식탁보 같은 옷을 샀다'고 말했다. 죽일 거다.




우리만의 송년회. 작년 할매와 혜자와 보낸 송년회는 '2013 남은 곗돈을 흥청망청 탕진하자' 라는 생각으로 이태원에서 전신마사지를 받고 스테이크를 먹는 것으로 보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돈이 많이 남았고 우리는 고민했다. (전적으로)나의 노력으로 셋 모두 마음에 드는 겨울용 나이키 운동화를 똑같이 맞춰 사고 남은 예산에 맞춰 용히네 집에서 저녁을 해먹는 것으로 따뜻하고 안락한 송년회를 계획했다. 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전 먼저 합정의 카페에 들러 편지를 썼다.




밀푀유 나베를 해 먹었다. 아이들과 있으면 나는 언제나 끊임없이 요리한다. 그래야만 한다. 십자 칼집을 낸 표고버섯을 올리면 사진은 더 예쁘게 나왔겠지만 나는 버섯 중에 표고버섯을 가장 아주 매우 싫어하므로 아예 장바구니에 담지 않았다. 만드는 게 간단하고 건더기를 다 먹은 후엔 고깃국물에 칼국수도 끓여먹을 수 있고 죽도 먹을 수 있어서 확실히 송년회, 신년회, 집들이 음식으로 차리기에 좋은 것 같다. 차돌박이나 불고기용 소고기가 조금 비싸긴 하지만 저렴하고 양 많은 채소가 그것을 상쇄한다. 일단 차려 놓으면 보기에 예쁘니 먹기 전부터 마음도 좋다. 




배부르게 먹고 이야기하고 웃고 이제 밤이 깊어 용히네를 떠났다. 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이어서 우리 셋은 팔짱을 꼭 끼고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걷고 있었다. 이 장면과 오늘이 아쉬워 내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이폰6로 최근 핸드폰을 바꾼 혜자의 의기양양함을 향해 우리는 브이. 절기를 오롯이 타는 우리 할매는 저렇게 꽁꽁 싸매 눈뿐이 안 보이고 흑흑.




시월 이후 두 달 만에 쏘를 만났다. 두달만에 만나다니 우리 선방했다며 좋아했다. 회를 사준다고 하길래 문어숙회를 외쳤다. 강남에서 만난 우리는 허영만 아저씨가 오간다는 문어집에를 찾아 갔다. 다이나믹한 쏘의 이야기를 피우며 문어숙회와 청하 네 병을 조지고 신난 우리는 나 일하는 펍에를 갔다. 아사히 생맥주를 와구와구 먹었다. 취했다. 




취했는데 무슨 정신으로 스티커 사진은 또 찍었는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이 사지 볼 때마다 너무 웃겨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취해서 주머니 간수도 못했는지 분할한 스티커 사진 중 작은 한장을 제외하곤 다 잃어버렸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진 잃어버렸다고 쏘에게 스캔해서 보내달라 하고 받아보니 사진이 저 지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중에 미키머리띠도 하고 나는 기분은 무척 좋은데 취해서는 눈도 못 뜨고 앞도 못 보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둘이 껴안고 찍은 건 또 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사진에서 제일 웃긴 건 저 하트 꼬라지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그냥 이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손에 쥔 그 한장을 매일 쓰는 섀도우케이스에 붙여놓았다.




우리 가족 송년회. 동네 갈빗집에서 돼지갈비와 냉면과 맥주를(물론 술은 나와 아부지만) 야무지게 먹고 동네 스타벅스에 들러 임여사와 커피를 마셨다. 계산은 아빠카드로 했지. 




아빠 카드니까 비싼 거 먹어야지. 시그니처초콜렛 따뜻하게. 샷도 하나 추가해서.




마치 나의 스물 네 살을 보는 것만 같은 동생과. 성격은 물론 성향, 하물며 주량까지 똑 닮았다. 얘기를 하다가 둘이 놀라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이제는 그런가보다 하는 지경. 많이 닮아서인지 마음이 많이 간다. 언니라고 부르고, 불려지는 관계가 거의 없던 나인데 이 동생만큼은 다르다. 주정뱅이 소울이 닮은 우리는 이전부터 또 근래 들어 술을 와구와구 마셨는데 이 사진은 24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을 끝내고 우리만의 크리스마스를 술로 채운 날. 다른 동생들 여럿과 함께 마시고 사진도 여러장 찍었는데 그 날 찍은 사진 중 이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든다. 나는 좀 조무래기 같은 얼굴이지만. 




적어 문 앞에 붙여 두고 잔다. 임여사 추워요 따뜻하게 입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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