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4) 그렇게 그런 일들

소통의 낭떠러지

재이와 시옷 2014. 10. 20. 16:42

소통의 낭떠러지.
Precipice of Communication.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는 때는 언제일까. 일생동안 그런 행운의 순간을 우리는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까.
속으로 삼키고 침묵하는 때가 많았다. 2010년부터 나는 그렇게 조용해지는 방법을 알았다. 모든 고통들은 개별의 것이고 그것들은 설명은 가능하나 공감되지 않는다. 나의 것이고, 너의 것이기 때문에. 하물며 그 고통의 순환에서, 시발점이 '나'였다면 이는 더더욱 말로 풀어질 수 없는 것이 된다. 나는 시작이었고, 그렇기에 말과 마음을 삼켰다. 

 

침묵으로 얻어지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같은 침묵, 그리고 오해.
내가 기대했던 것은 같은 침묵이었다. 내가 말과 마음을 삼켰으니, 이에 대해 길게 따라붙는 거추장스러운 말꼬리 또한 없겠거니 했다. 나의 기대는 말끔히 소실되었고, 그을린 자국이 남은 자리에선 오해가 자랐다. 나의 소식은 나에게조차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고 내가 겪는 이 공허가 누구를 만난 다한들 채워지지 않는 것임을 알아서 사람들을 피했다. 친구들은 조용히, 자기들만의 수군거림으로 내가 알아서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주었다. 무거운 걸음을 떼고 이제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나는 호르몬처럼 뿜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제 자리로 돌아온 척을 했다. 
사람들은 안도했고 빠르게 현실로 되돌아갔다. 이미 벌어진 일, 사실이 되어버린 일을 구전된 전래동화 정도의 대수롭지 않음으로 입에 담지 않았고 생각에도 두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모두가 빠르게 자리를 찾아갔는데 나는 여전히 고무패킹 빠진 의자에 앉아 삐걱삐걱 괴로운 소음을 내며 바닥을 끌고 있었다. 그들을 미워할 수 없었다. 원망해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다시 침묵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기대하지도 그렇다고 예상하지도 않은 말이 타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놀란 나의 속에서는 비명이 날카롭게 울렸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가슴이 뛰었지만 조용히 소리 없는 웃음을 보였다. 그들이 그저 안도하게끔. 딴생각을 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나는 내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나는 많이 달라졌다. 계속해서 딴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낭떠러지에 있다. 우리들의 대화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 체념했다. 그리고 이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 세계에서 나의 글자와 문장들은 오래오래 살 것이다.
노인들만 모여사는 늙수그레한 마을처럼, 늙고 병든 나의 언어들은 이곳에 머물고 잠들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낭떠러지에서 시작한다. 대화의 상대가 없어도 상관없다. 듣는 이를 고려한 혼잣말이 아니기에.
낭떠러지 저 바닥에 새겨 넣는 나의 이야기들. 
이곳은 내가 도망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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