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seek; let

눈을 감는 건

재이와 시옷 2023. 1. 31. 22:17

 

 

사랑의 말을 적고도 싶었고 그리움의 말을 적고도 싶었다. 사랑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리워하는 나날을 몰래 삼키기도 했어서. 또 한 달의 끝을 닫으며 이런 식으로라도 말꼬리를 늘여 놓으면 계속해서 이 가느다란 끈이 이어질 것만 같으니까. 처음 들어본 말 앞에 애꿎은 손톱 끝을 뜯으며 숨소리만 골랐다. 놓쳐야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아 잡지 않았다. 그게 그를 위한, 그가 바라는 게 아닐까 했는데. 돌아온 말은, 이렇게 쉽게 놓을 수 있는 거냐고. 그런 거였느냐고. 왜 잡지 않느냐는 말. 잡아도 되는 거였을까 바랐던 것이 그것이었을까. 입을 벌리고 숨만 죽이던 그때에 떠오르던 건 다름 아닌 십여 년 전 나의 못난 뒷모습. 말을 떼어볼 걸 입을 열고 바짓가랑이를 붙들어 구질구질하게 들러붙고 매달려볼 걸 잡아서 절대 놓지 말 걸. 이 모든 걸 혀 아래 두고 빈 숨만 벙긋대던 못난 나의 모습. 

 

연휴 직후인 데다 날이 추웠는데 당신의 가족들은 당신을 찾아갔을까. 내리는 눈비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너른 지상 한 귀퉁이에 있는 당신을 당신의 가족들은 찾아갔을까. 울었을까 보고 싶다고도 하고 사랑한다고도 하고 밉다고도 했을까 내가 늘 읊는 헛소리같이. 사랑의 말을 적고도 싶었고 그리움의 말을 적고도 싶었다. 당신의 열세 번째 기일이 지났다.

 

 

 

 

'seek; let'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물며 모든 계절이니까  (0) 2023.10.20
계절 옷  (1) 2022.09.29
듣는 이는 없고  (0) 2022.08.30
추억과도  (0) 2022.08.12
hOMe  (0) 202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