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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seek; let

추억과도

재이와 시옷 2022. 8. 12. 21:44

 

 

 

 

 

완전한 이별을 위해선, 감정뿐만이 아니라 그때의 추억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는 걸. 당연한 것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노랫말로 훈계를 들은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럴 수 있다는 말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거의 같은 농도로 뱉는 것에 대해. 타인에게 도통 관심을 쏟지 않기도 하면서 어떤 때엔 이 물렁한 고독이 징그러운 촉감이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이 모양새가. 나를 너무 쉽게 불쌍히 여기고 또 너무 쉽게 용서하고 만다. 나를 끌어안아 준 적은 없지만 뒷걸음질 뒤에 그 마지막 한 발짝까지 몰아세우진 않는다. 그 뒤는 절벽이니까. 

 

소중한 것에 대해 의심을 시작하면 결국 다치는 것은 마음일까 사람일까. 의심이 시작된 순간부터 소중한 것에서 탈락되는 게 아닐까. 지키고 싶다는 욕심과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과의 싸움이다. '그래도'와, '왜'가 끊임없이 다툰다. '그래도 지켜야지'와 '왜 내가 그래야 하는데'가 목소리를 높인다. 어떤 때엔 무엇이 이기기도 하고 어떤 때엔 그라운드가 사라지기도 한다. 

 

호기심에서 발화한 얕은 감정이라는 걸. 성애도 욕구도 되지 못하는 그저 비칠듯한 두께의 관심일 뿐이다. 손가락 한마디라도 걸쳐지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서 되는대로 뻗었던 적이 있다. 남들에겐 사랑이라 떠들고 나에겐 취미활동 정도로 여겼던 적이 있다. 마음을 아예 주지 않는 것은 그래도 눈치가 보여 적당히 장단을 맞추다 하루아침에 다 내팽개쳐버린 그런 날들이 있다. 

 

어떻게, 어떤, 사랑을 했었는지 감은 눈처럼 까마득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쓰지 않으면 내 안에서 다 지워질 것 같아서 오늘도 추억과는 전혀 이별하지 못하고 그때의 당신과도 이별하지 못하고 그때의 나만 꾸짖고 잔뜩 울리는 무언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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