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6) 마음을, 생각을, 잘 4

'왜'와 '그래서'

어디서부터 일까. '틀린 부분을 체크하시오' 같은 퀴즈였다면 조금 더 쉬웠을까. 인생은 물음표 투성이인 것 같은데 왜 정답만 모아 놓은 해설지는 눈에 띄지 않는 걸까. 머릿속에 두고도 못 찾는 걸까. 한참을 뒤적거린 것 같은데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애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사랑받지 못한 유년을 스스로 떠올려야 할까. 가혹하게.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헤집고 헤집어 엉망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미안함이 있어서'라고 했다.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시절을 함께 보냈지 않은가. 일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 자란 우리였다. 할머니 손에서, 품 안에서 따뜻하게 자란 장남과 조금 비스듬한 그늘 아래서 품보단 바깥 볕이 더 좋아 괜찮다며 혼자 고..

춘삼월, 이라 부르지 않았었나

달에 두 번. 날씨를 문자로 옮겨놓은 그것이 참 신기하고 예뻐 달력에 적힌 절기를 꼼꼼히 소리내 읽어보곤 했다. 아주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게 꼭 맞아 떨어질 수가 없다며 절기가 일러주는대로 옷을 꾸려입고 때론 후회도 하고 꽃내음을 깊게 들이쉬며 경탄도 하고 그랬다.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내지 않았나. 우리의 시기를 '춘삼월'이라 부르곤 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곧 춘삼월이 도래하지 않겠나, 그때가 되면 우리 역시 꽃피겠지, 우리 또한 활짝 피어나겠지 따뜻하겠지 아름답겠지 우리의 사랑이 더욱 무르익겠지. 시절이었다. 아름다운, 말로 다 할 수 없이, 야릇한 봄내음으로 가득했던, 그런 시절. 마음을 쓰는 방법을 다시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배워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

악의없음으로

악의 없음으로. 악의 없음으로 상처 줄 수 있음을. 의도하지 않은 말들, 마음들, 문장들, 그를 포함한 모든 권유들 또는 위로들, 그것들 모두가. 위로라는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힘의 크기를 조절하지 못하고 뭉툭하게 나의 어깨로 떨어지던 당신의 팔을. 내릴 수도, 뿌리칠 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대로 받아냈다. 툭툭 아프게 떨어지던 그 무게가 당신이 묵혀 놓은 마음의 무게 인가 하며 그렇게 가만히 자리에 엎드려 누워 있었다. 눈을 맞출 수 없었다. 제멋대로 이미 터져버린 눈물이, 당신과 얼굴을 마주한 순간 더 미쳐 솟구칠 것 같았기에. 걱정이 돼서 그랬던 거겠지. 어떤 악의 없이, 당신이 쭈뼛거리며 꺼낸 어색한 서두처럼 '이간질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말이었겠지. 이렇게 느껴졌는데 이것이 진..

마음을, 생각을, 잘

냉장고 안 귀퉁에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며칠 된 식빵처럼, 눈으로 마음으로는 흘깃거리면서 버려 놓았던 2015 두계절이 지나간 나의 블로그. 애정을 아주 접지도 못하여 마음은 계속 쓰고 있었으면서 기록도, 짓는 것도 모두 흥미를 잃어 될대로 돼라는 생각으로 한 켠에 치워놓았다. 의욕이 없으니 될대로 돼라는 막무가내의 주문이 통할리 없었다. 무엇이 되지 않았고 그저 여기 있었다. 제자리. 나의 마음을, 저 아래 구겨 접어놓았던 먹지 같은 그것들을 꺼내놓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백지. 이제는 찾아갈 수 없는 철원의 아버지 가게처럼 나의 도피처가 되어주는 곳. 이곳. 마음을, 생각을, 잘. 다이어리에 가장 먼저 새기는 문장이 있다. 문장은 매해 다르다. 나름의 슬로건이랄까, 만성 게으름을 앓고 있는 나라서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