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toss and turn 21

구월, 제주의 해가 피부에 아직 남아있다

9월, 제주도에 다녀왔다. 다녀왔었다. 21일 아침 일곱시 비행기를 타고 가서는 만 사흘을 떠돌다가 23일 밤 아홉시 반 비행기를 타고 서울집으로 돌아왔다. 사흘을 꼬박 채웠던 여행이었다.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도망치고 싶을 때면 제주에 가는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려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언제든 단출하게 짐을 꾸려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베짱이의 아주 큰 장점이었으니까. 무척 많은 억새가 보고 싶어 9월과 10월의 어디쯤 떠나는 날을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정작 용눈이오름에 가지 않아 많은 억새는 보지도 못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티켓 사이트를 얼쩡거리던 어떤 날, 새벽 네시쯤이었을까. 미리 계획이라도 세워둔 양 표를 예매했다. 다가온 날에 맞춰 새벽 지하철 첫차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임여사에..

열마리의 고양이

밥이다아아아아 폴짝 지나가는 삼색이 으쌰. 밥을 향해 가는 삼색이 으히히 뒷모습 봐. 아직 살집이 다 오르지 않은 날씬한 뒷태. 비,비웃지마라. 인간이라고 무시하냐? 아구 예뻐. 삼색이와 까꼬 투샷. 전투적인 삼색이. 아우 단아해 예뻐. 줌인 했더니 화소가 조금 깨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로딩. 예쁘니까. 아롱이와 까꼬. 아롱이가 까꼬엄마였던가? 얘는 되게 소심한 삼색이. 맨날 숨어있고 밥도 쭈구리처럼 먹고 그랬다 짠하게시리. 거의 올블랙에 가까운 턱시도냥이는 비쥬얼은 제일 근엄쩔 것 같은데 외지냥이인지 어딘지 모르게 이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 그래서 밥도 조금 쭈구리처럼 먹고 그랬는데 쉴 때는 또 저렇게 아롱이랑 붙어있대? 냥이들 의중을 알 수가 없어 그래도 좋아. 예쁘니까.

여름의 경주

내일로 기차여행을 하며 잠시 들렀었던 몇 해 전의 경주. 기차 시간이 빠듯하여 남들 다하는 자전거 빌려타기도 못해보고 삼천원 짜리 우산 꼭지 하나에 의지해서 역 근처를 뽈뽈거렸던 기억. 밥 한끼 먹지 못했고 첨성대 지척으로 가지 못해 먼 발치에서 사진만 몇 장 담았던 것이 고작이었다. 밤의 안압지를 보는 호사는 당치 않고 그곳으로 가는 연꽃길이나 조금 걸었던 게 전부. 그리고 올해 겨울, 약 열흘 가량을 눈이 덮인 경주에서 보냈었다. 무척이나 평화로웠지만 쉬이 밖을 다닐 수 없던 환경에 별장 밖으로 나와 산길을 돌며 콧바람을 들이키는 것에 감사했던 겨울. 그리고 다시 계절이 두 번 바뀌어 여름, 경주를 찾았다. 내가 도착한 것은 11일 월요일. 그 전 주에는 내내 비가 쏟아졌었다고. 의아해하는 것이 당연..

경주에서 씁니다

지난 목요일 저녁부터 오늘 그리고 지금까지 경주에 머물고 있다. 요리할 맛이 절로 나는 좋은 부엌과 색깔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벽난로의 온기를 거실에서 쬐며 작지만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평화를 유영하고 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오래오래 눈이 내렸고 오후에는 눈을 맞으며 눈사람을 만들었다. 발자국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들고양이의 뒤를 쫓기도 하고 발자국 없이 하얗고 길게 늘어선 길을 밟으며 멀고 먼 장관을 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경주에서 쓴다.

2013 칠월의 제주 0710 # 1

바빴던 것 아니구요. 술에 잠겨있던 것 아니구요(그렇다고 아예 안 마신건 아니지만) 제주도 여행 준비 설렁설렁 하면서 비가 오면 어쩌나 떠나는 날까지 마음 졸이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어요. 서울국제도서전에도 다녀왔었고, 가서 담아온 책들을 읽기도 하면서 오빠가 2013년이 되며 사준 스타벅스 다이어리의 가죽(아마 가짜겠지) 가장자리들이 까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하기도 하고. 없는 살림에 쇼핑하겠다며 악을 쓰다 통장잔고를 다 털리기도 했구요 통금과 외박 문제로 가족 회외를 하다가 아부지를 분노케 해 현재 콩가루 집안st가 되기도 했어요. 아무튼 잘, 있어요 조금 더 긴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