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5) 비틀 휘청 차츰 5

고통의 역사

최근 읽은 책 한 권이 있다. 책을 사들이는 일에는 끊임없이 부지런하여 지금도 첫 장 한 번 펴보지 못한 여러 권의 책들이 책장에서 먼지를 묵묵히 받아내고 있지만, 서점의 온라인몰 장바구니는 비워질 줄 모른다. 책을 읽는 것도(책을 고르고 담고 내게 오기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들까지 모두 포함하여) 너무 좋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너무 좋다. 술자리 한 번을 취소하면 못해도 책 세 권은 살 수 있는데 그 정도를 조절하는 게 참 나는 멋쩍다. 아무튼, 지난달 임여사가 준 문화상품권을 써 구매한 책이 한 권 있다. . 오랫동안 마음이 아픈 병을 앓은 작가와 그 작가의 정신과 담당의가 함께 쓰는 이야기. 아픔과 병에 관한 이야기. 7년을 서로 만났다고 했다. 만남이라는 단어는 언뜻 수줍어 보이지..

날(日)들의 갈래

눈병에 걸렸다. 눈병을 앓은 지 2주 정도 되었다. 다래끼로 한 눈이 부어올라도 '금방 낫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방치하다시피 하면 어느새 낫곤 했다. 약을 따로 먹지 않아도, 내원을 하지 않아도. 난시가 무척 심하지만 세상 잘 보는 것에 욕심이 그다지 없는 나는, 눈과 관련해선 스스로 속을 썩여본 적이 없는데 지난주 덜컥 눈병에 걸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하루, 눈이 조금 붓는가 싶더니 이틀, 눈병에 걸린 눈이 제대로 떠지질 않았다. 사흘, 안대 또는 선글라스 없인 사람 있는 곳으로의 외출을 꺼려야 할 만큼 눈이 엄청 부었다. 흰자위 검은자위 구분 없이 눈이 온통 빨갰다. 그리고 아팠다. 동네 윤안과 세미그랜드파(=준할배=중년과 노년사이)의 진단은 영 못 미더웠다. 눈의 상태를 설핏 보곤 '어떻게..

안고 싶은 마음

'품이 그립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외로움의 정의를 몸소 내려본 적 없는 나는 농담으로라도 외롭다는 말을 쓸 줄 모르는데,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인지 '품이 그립네.' 등의 시시껄렁한 말들은 혼자서 툭툭 뱉고는 한다. 짧고 굵었던 여름이 점심에만 머물며 아침과 밤으론 가을이 살며시 앉았다. 그 온도차가 귀엽다. 단출하지만 쌀쌀하지는 않도록 입을 옷을 챙기며 이리저리 뻗어지는 손길이 아직은 재밌다. 이 재미도 조만간 사라지겠지. 완연한 가을이 되면 외투는 꼭 필요한 것이 될 테니까. 그전까지 이 소소함들을 아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오랜만의 글이다. 칠월의 기록 이후 두달이 지났다. 여러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보며 즐거워할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으로 노트북을 열고 그 앞에 앉았다. 온전하지 않을까..

비겁

포기와 맞붙은 삶이라 비난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만큼 많은 부분을 내려놓았다. 정규직 일개미를 원했던 열정은 어느 순간 동경에 가까워졌고, 먼 곳으로의 떠남 혹은 숨어버리는 것에 대한 열망은 2년 만에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다시 타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부족하고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른바, '퉁치며' 살고 있다. 삶이 퉁쳐지는 것이라니, 내 삶이 대충대충 퉁쳐지고 있다니, 우습다. 재미있고 기괴하다. 외출 후 돌아 온 나를 인지하지 못한 엄마 아빠의 대화 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덤덤하게 들었다. 두 사람은 나를 걱정함과 동시에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구는 막내딸이 못마땅하지만, 당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크지 않아 손 내밀지 않고 묵묵히 때로는 무서울 만큼 ..

단출해지는 연습

단출하다 [형용사] 일이나 차림차림이 간편하다. 높은 기대와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대단한 삶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에 나를 이루기까지 어렸을 때부터 체득한 방식과 그것들로 꾸려온 삶은 그렇게 단순하진 않았다는 생각이다. 운이 좋은 편이고 인복이 많아 언제나 감사하다고 입에 달지만 실상 그렇게 살가운 사람이 못되기도 할 뿐더러 나는 자기중심적이다. '너는 제멋대로야.' 라는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었던 순간에야 알았다. 아, 내가 제멋대로인 사람이구나! 그것은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너무해!'의 까탈이 아니라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 전까지 나의 생각과 행동을 풀어내는 데에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했으니 당연히 운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내곁에 남아준 지인들은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