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4) 그렇게 그런 일들

아무튼

재이와 시옷 2013. 9. 22. 22:06

 

 

 

기이할 정도로 오래 빛을 마주 보게 될 때가 있다. 대개의 일요일 오후쯤이 그렇다. 닫힌 방문과 해가 뜨는 자리를 등진 창문으로 이뤄진 내 방 안에 있다 보면 낮도 밤도 분별할 수 없지만, 굼뜬 몸 덩어리를 끌고 거실에 다시 와 드러누워 있게 되면 어김없이 그렇게 빛과 마주 본다. 승패가 없으니 승자 역시 없다. 우주와 생명체의 근간인 그것과 눈싸움을 겨룬다 해서 폭발적인 어떤 에너지를 공분받는 것도, 소모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냥 자리에 누웠는데 그 가시거리 안에 발광하는 그 구(球)가 있었을 뿐이다. 소득 없는 시비였을 뿐.

 

단락이 나눠진 장편 소설 한 권을 아직 다 읽지 못했고 두 번의 신용등급을 평가받는 암묵적인 긴장 안에서 너는 안된다는 명확한 사인을 되돌려 받기도 했고 바로 옆에 앉은 아버지와는 단 세마디의 실없을 대화를 나눴다. 내년이라고 스스로 못을 박았던 여행에 대해, 그 자금의 쓰임에 대해 고심해야 했고 재취업이 늦어지는 친오빠를 향하는 날 선 비난을 여러 차례 꿀꺽 삼켜야 했다. 몇 번의 외박이 있었고 엄마의 히스테리컬을 견디지 못한 나의 비명이 속에서 쩌렁거리기도 했다.

 

달이 내리는 밤, 영화를 보고 나와 자연스레 불을 빌려보는 인연은 어떠한가에 대한 상상으로 담배를 일찍이 배웠다면 지금 나의 모습과 얼만큼 간극이 드러났을까 짐짓 흥미롭기도 했다.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고 술을 많이 참기도 했고 술을 많이 못 마시기도 했다. 울다 잠드는 날이 사라졌고 아침 출근길 머리를 말리며 액자에 희멀건한 인사를 건네는 일이 잦아졌다. 겨울엔 연애를 하겠다는 포부를 여기저기 이곳저곳 밝히며 비웃음을 자초하기도 했고 정말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모지리처럼 혼자 다지기도 했다. 두 번의 책 선물을 했다. 

 

아무튼 방귀같은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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