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4) 그렇게 그런 일들

길어진 낮잠으로 밤의 것을 모두 뺏기고

재이와 시옷 2013. 9. 29. 03:19

 

 

길어진 낮잠으로 밤의 것을 모두 뺏기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새벽을 넘기고 있는 중이다.
몇 번 생각해보았던 것들에 대해 활자들로 옮겨 적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정리벽이 순간 돋아, 텍스트 창을 열었다. 지금 반복해 듣고 있는 노래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악하지 않은 스스로라는 걸 안다. 이왕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비춰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노라는 부정보다는 예스라는 긍정을 더욱 자주 입에 달고 살아왔으니까. 이십 대의 중간 지점을 어느새 훌쩍 지나쳐가는 지금까지의 나를 보았을 때 그래, 썩 괜찮은 삶이기는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전혀 부유하지 않았지만 나를 존중해주는 부모 밑에서 낳고 자라 배우고 싶던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찬란한 기회를 얻기도 했고, 아르바이트의 기억으로 거의 뒤덮어진 대학생활이었지만 쓸모 있는 것들을 배웠다 수긍한다. 좋은 사수를 만나 어렵지 않게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일을 배워나가며 신임을 얻기도 하고, 학자금 대출과 각종 생활 명목의 대출금을 갚느라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빠듯한 급여지만 그래도 매달 임여사 옷 한 벌, 그럴싸한 외식, 내가 좋아하는 술자리 등을 가지기에 쪼들릴 정도는 아니니까. 아무쪼록 불평 갖고 불만 많던 이제까지의 일상들이 '어디 더 읊어봐' 라며 일침을 놓고 지나간 느낌이다. 이 정도면 과분한 것을 왜 그리 생떼를 썼던 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실망과 결단으로 멀리 둔 인연들도 분명 있지만, 모든 것들은 나의 결정이었으니까. 그 선택들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 내 곁에 조분히 남아있는 나의 울타리들만으로도 행복한 지금이니까.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내 곁에 조분히 남아있는 나의 울타리들에 대해. 고마운 것들이 새삼 많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편지말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적어 놓고 나면 내 마음의 이 벅참을 조금 덜어내고 다시 그들의 정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낯간지럽지만 사랑이라는 말이 맞다. 온 애정을 쏟는 연인에게 고백할 때의 그 사랑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는 사랑이라는 생각이다.
나의 사랑들에게 하는 말이다. 


 

너는 오래 내 곁에 있었고, 나 역시 오래 너의 곁에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것이었을 때보다 서로가 서로의 것이 아닌 지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더 서로를 알 수 있었다.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엉엉 울음 짓던 너를 앞에 두고 앉아 담담한 얼굴로 마주했을 때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도 끼어들거나 공유할 수 없는 비밀 아닌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대개의 관계들과 종료에 이은 그 후처리 방식 등에서 숱한 지인들에게 물음표를 시사하곤 그게 뭐냐는 식의 비아냥을 들을 때도 있었다. 헤어졌으면서 왜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느냐고. 하지만 스스로의 다짐과 당연한 생각으로, 나는 오래 네 곁에 있을 생각이다. 너 역시 내 곁에 오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오늘만이 아닌 몇 밤 동안 네게 무척 고맙다는 마음을 피웠다. 전화해 말을 해줘야지. 오늘의 달이 예쁘다고 말해주었던 네게 전화해 생각이 났고, 보고싶기도 하고, 그리고 무척 고맙다고 그렇게 말해줘야지 했지만, 걸려 온 네 전화에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웅웅 거린 기억만 남았다. 느끼고 있겠지만,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야. 네가 알고 있었으면 해. 내가 참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이런 말들을 해줘야지, 하고 나름 정리해두었던 것 같은데 줄이 넘어가는 화면을 가만 보고있자니 딱히 어떻게 말을 적어야 할지 몰라 짐짓 당황스럽다. 너는 내 블로그에 오지 않으니 이 글을 보게 될 일도 없을 거고, 그래서 더욱더 만나서 또는 전화로라도 말을 해줘야 할 텐데. 번거롭고 쑥스럽지만 그렇게 해야만 네가 알 수 있을 텐데.
네게도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 너였다는 것에 나는 참 다행을 느껴.' 라고.
다행이다.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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