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see

브로큰 서클 The Broken Circle Breakdown, 2013

재이와 시옷 2013. 11. 25. 00:00





일요일은 대개 임여사와 두툼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집에서 쉰다. 임여사의 일주일 중 유일한 휴무이기도 하고, 두툼이의 저녁 출근이 대부분인 날인지라 셋이 유일하게 같이 식사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 잔뜩 술을 마시고 논 다음엔 바깥 날씨에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어떨 땐 일요일 하루 내내 한 발자국도 집을 나가지 않기도 한다. 심지어 잦은 편이다. 오늘도 그와 비슷한 일요일이었다.
새벽에 잠든 만큼, 오후 정확하게는 우리집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비몽사몽 눈꼽 부스러기를 다 떼내지도 못한 새끼망아지같은 꼴을 하고선 밥상 앞에 앉는다. 새벽 목욕을 다녀온 임여사의 얼굴만 반질 반질. 에그머니 놀랄만큼 두부가 잔뜩 들어간 돼지고기김치찜에 소복한 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 셋이 갖는 커피 타임. 비릿한 공기가 너울댄다 싶어 임여사에게 물어보니 아침에 비가 왔었다고. 열린 현관을 지나 거실 복도까지 넘실넘실 잘도 넘어 들어온다. 


와이파이존만 껄떡대는 신세인 나는 임여사 핸드폰에 트위터앱을 깔아두고 종종 타임라인을 살폈다. 흥미없는 타임라인을 죽죽 훑어내리다 시선이 멈추는 트윗을 발견. 상상마당의 트윗이었다. '영화, 블루발렌타인과 우리도 사랑일까를 인상 깊게 본 관객이라면 맘에 들어할 영화가 오늘, 상상마당에 개봉한다'고. 트윗을 2시에 보았고 영화 시작 시간은 4시 10분이었다. 영화는 <브로큰 서클>


현실과, 현실의 사랑과 접점에 가 닿는 몇 편의 영화들이 보는 동안 스쳐 지나갔다. 비포미드나잇이 그 중 있었고, 미리 언급된 우리도 사랑일까와 블루발렌타인 등도. 하지만 그 영화들과는 다른 감정선이 있었다. 
뜨거운 사랑, 완성과도 같은 행복, 그의 연장, 상실, 좌절, 분노에 이르다 자기멸시, 삶에의 환멸, 어떤 다짐, 찾은 믿음, 하지만 이별.
영화는 예상보다 죽음과 가까이 닿아 있었다. 몹시도.
죽음에 닿는 영상과 텍스트에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나를 다시 볼 수 밖에 없어 심정이 아렸다. 마음이라는 감정적 명사보다는 어쩐지 심정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메이벨을 잃은 둘 사이의 그 공백과 이것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외면하는 둘의 마음을 고스란히 알 수 있었다. 누구도 물을 수 없었을, 그 질문이 만들 파장과 거센 물결의 날이 서로를 어떻게 베어낼 지 충분히 짐작했을테니까.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 안간힘을 쓰는 둘 사이의 긴장이 아주 가볍게 파괴되어 그 조각이 흩뿌려지는 것을 스크린 너머에서 바라보며, 우리의 안락이 이 얼마나 유약하고 허술한 것인 지, 다시금 젠장맞게도 다시금 알아버린 거다. 


영화는 아름다웠다. 엘리제도 디디에도 메이벨도 엘라배마도 먼로도.
우리는 모두 별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