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4) 그렇게 그런 일들

거짓말에 대해

재이와 시옷 2014. 10. 5. 21:04

 

어떤 소녀스러운 감성으로 꾸며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진심으로 내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했다-'라는 과거형의 문장을 적을 수밖에 없어 참 씁쓸하지만 다 내려지지 않은 결론으로 보건대 그리 적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나의 말하기 형태'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목소리의 고저(高低)와 말의 빠르기, 발음의 정확함 이런 것들을 모두 포함하여 '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미 지나쳐 간 장면에서 '아,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것보다 더 좋은 비유가 있었는데. 그랬다면 설명도 더 쉬웠을 거고 내 생각을 전하기에 더 알맞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는 순간들이 꼭 있다. 안타깝게도 번번이. 
이런 생각들을 지나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은 "정말 나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인게 맞나?"이다. 뭐 이런 개똥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앉았나 싶기도 하지만 나는 정말 그렇다.
거짓말을 꾸며내는 데에 치명적일만큼 취약한 것은 아니지만, 늘 했던 이야기는 그랬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겐 거짓말 못해.' 캬 낭만적이다 정말. 그랬다. 정말 그랬어. 애인 앞에서의 거짓말은 늘 서툴렀다. 그 서투름이 내가 느끼기에도 꼴 보기 싫고 되려 상황을 안 좋게 빚는 것 같아(대개의 거짓말의 말로가 그렇지만) 나중엔 거짓말 자체를 포기하게 됐었다. 꾸며 말해 무얼 하나. 어차피 얼굴의 표정과 목소리 떨림에서 다 드러날 것이고, 보기 좋게 꾸중을 맞을 텐데. 그런데 이게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과거의 애인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해놓고 지금 애인 앞에서는 거짓말을 잘하는구나? 이 무슨 애정의 차별이야? 이런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나는 거짓말에 서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가제를 잡고 나를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작정하고 꺼내 기록하는 것은 사실 최근의 내가 거짓말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것들부터 어쩌면 야유를 받을지도 모를 사안의 것들까지. 반성을 해도 나를 명확히 정의한 후에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적는다.

 

/ 거짓말의 대상들. /
가깝지 않은 주변인에게 말을 꾸며내는 것은 쉽다. 이건 정말 쉽다. 거짓말을 했다. 라는 자책이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쉽다.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어렵다. 허나 이것은 마음이 어려운 것이고, 거짓을 짓고 말하는 자체의 난이도는 쉽다.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어렸을 적, 두툼이가 아빠 지갑에 손을 대고 가져가지 않았다 거짓말하는 것에 어린 마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동조했다가 한겨울 발가벗은 채로 둘 다 대문 앞에 서게 됐었다. 오돌오돌 살이 점점 얼어가는 느낌이 아프고 무서웠다. 아빠가 화가 난 이유는 돈을 훔쳐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해서였다. 그런 성장배경이 있어서인지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순간에는 머뭇하지 않는다. 나만 아는 마음의 짐이 생기지만 충분히 감당할 만큼이기에 쉽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어렵다. 이왕이면 친구에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너와 나 사이에 구태여 무언가를 속이고 감춰 피곤해질 이유가 없다는 의연함이, 거짓말을 꼭 해야만 하는 충분의 정도보다 높다. 단, 거짓말을 하지 않는 만큼 진실을 말하지 않는 때는 있다. 말을 아끼게 되는 경우들을 만나는 것이다.
나로서는 말을 한 번 삼키는 것이니 최근까지도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약 두달 전쯤에 할매와 혜자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혜자로부터 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들었다. 당시 나는 나 혼자 갖고 있던 곤혹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굳이 말하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물어온다면 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지만, 먼저 입을 열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 꼴을 보던 혜자는 "이 년 뻔하지. 자기 혼자 펑펑 다 내팽개치고 난 다음에 한 달 정도 시간 다 지나서야 어깨 으쓱하면서 '그냥 그렇게 됐어'라고 말할 년이야 저거. 항상 그랬잖아 저거."라고 말했다. 소오름(ㅋㅋㅋㅋㅋㅋ) 들으며 어찌나 뜨끔하던지. 그제야 내가 삼켜 없애버리는 말들이 제법 많다는 걸 알았다. 막역한 사이기 때문에 이것도 가능한 것 같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기다려 줄 수 있다는 어떤 신의가 서로에게 있기 때문에.

 

오늘의 가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대상과 그 거짓말에 대해 꺼내보자. 좋아하는 사람. 애인. 애인이다.
애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마음이 제일 무겁다. 애인의 정의는 참 신비롭다.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니고, 짧게는 몇 년부터 십여년을 막역히 지낸 친구 사이도 아니고,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는 은사님이나 선생님 등의 훌륭한 내 주위 어른도 아니다. 그 어떤 관계들과도 한 집합 안에 묶일 수 없고 아예 다른 카테고리를 차지한다. 1인이기에 가장 작은 관계의 부피를 갖지만 중요도로는 그 무엇보다 앞에 선다. 적어도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그렇기 때문에 애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어렵다.

 

꾸밈없이 곧은 삶을 평생 살아가겠다는 자신은 없다. 나는 다정하려 애쓰는 사람이지 천성이 선하고 맑은 사람은 아니기에. 문장을 이어가고 문단이 점차 더해지며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에 떠도는 부유물들도 정리가 된 것 같다. 말끔하지는 않지만 한 치 앞 시야도 분간 못 할 정도의 탁함과는 멀어졌다 분명히. 이제는 말을 바꾸어 잘- 말해야지. '거짓말에 능숙한 편인데, 좋아하는 사람에겐 거짓말 하지 않으려 해요. 좋아하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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