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4) 그렇게 그런 일들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

재이와 시옷 2014. 9. 21. 22:23

 

 

 

/ 이성 또는 동성에게까지 별 수 없이 마음이 죄다 흔들리고 마는 두 가지의 감각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겠지만, 스스로는 이 감각에 무척 예민하다고 믿고 있는. 바로 냄새와 목소리. 한 사람이 가진 특유의 냄새(그것이 불유쾌 어떠한 것이든)는 그것보다 더 강한 향수라는 공산품으로 덮을 수 있다. 하지만 목소리는 다르다. 우스꽝스럽게 잠깐의 변조는 가능하겠지만 평생을 거짓소리를 내며 살 수는 없으니까. 좋은 목소리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듣는 순간 흐너지고 만다. 목소리를 업으로 삼는 이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일상에서 귀를 스쳐가는 '좋은' 목소리들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귓바퀴를 깔대기 삼아 집중해 듣곤 한다. 뜬금없이 목소리 얘기를 하는 것은 좋아하는 기자님이 게스트로 있는 팟캐스트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리 기자님 제가 많이 좋아해요. 아이 수줍어.

 

 

/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사실 반베짱이인 지금의 신분에서는 작정하고 만들면 차고 넘치는 것이 시간이긴 한데 그것과는 별개로 한가지에 진득하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래 그것은 바로 책 읽기다. 아주 못났던 때보다야(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변명이래도 어쩔 수 없다. 허허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적음은 부인할 수 없다. 누가 혼을 내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알게 모르게 욕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리 독서시간에 메이는 이유는,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한참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책을 사기는 계속 사는데 책은 그만큼 읽지 않고 있다는 문제. 더 자책을 곁들여 말해보자면, '쓸 데 없이 돈을 쓰며 책으로 방을 어지럽히고 있는 꼴'이랄까. 나의 의지가 강인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나에겐 강제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강.제
하루 한시간에서 두시간 정도는 핸드폰 전원을 아예 꺼두고 책을 읽어야겠다. 시간 개념에 어떤 강박이 있는 애인 덕에 좋은 영향을 받으며 점차 발전해가고 있기는 한데 제멋대로의 기질을 어디 버리지 못해 그 속도가 한참 느리다. 그러니 내가 나를 쪼을 수 밖에.

 

 

/ 운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생에서 결코 버릴 수 없는 가장 큰 불행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지속되는 삶과는 별개의 공간에 묶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를 돌아보았을 때, 벗어날 수 없거나 견뎌낼 수 없는 시련은 없었다. 모두 지나칠 수 있었고 참아낼 수 있었다. 시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농담 속에 진담을 칠해 했던 말들이었다.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운이 좋으니까, 잘 될 거야.' 사실, 이보다 막연한 말은 없다. 잘 될 거야 라니. 무엇이, 어떻게, 언제, 잘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더 희망을 걸 수 있다. 제한이 없으니 작든 크든 좁든 넓든 뭐가 되었든 '되긴 한다.' 그렇게 기다렸다. 당신의 간절함과 노력을 알고 있어 마냥 좋은 소식을 기다렸다.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을 건내면서. 그리고 잘 되었다. 마침내, 드디어, 이제서야, 결국엔, 다행스럽게도, 감사하게도. 
있는 힘껏 축하해 줄 수 있어 마음이 벅차다. 잘 되었다. 잘 되었어. 

 

 

 

/ 에쿠니가오리의 소설을 얼마만에 읽어보는지. 고등학교 도서관을 줄기차게 오갔던 때, 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나만의 창가 자리를 만들어 두었던 그 때. 몇 년 동안은 참 열심히 일본문학을 읽었더랬다. 그 때에는 그 가벼운 듯 진솔한 감성이 나의 책읽기와 잘 맞는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한동안 일본소설을 거의 안 읽다시피 했다. 왜 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이웃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지켜보던 블로그의 주인의 포스팅에서 위 책의 커버 사진을 보았다. 그 후 공부에 필요한 책이 있어 들른 알라딘에서 이것이 떠올랐는데 마침 재고가 있길래 사와서 읽었다. 사이말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은 들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던 글의 분위기가 그대로여서 그 사실이 신기하고 반갑고 그랬다. 문체가 어렵지 않고 조근조근 이어지는 3인칭 시점이다보니 더 친근하게 느끼며 읽었던 것 같다. '한낮인데 어두운 방'이라는 제목이 제일 마음에 든다.

 

 

 

/ 늦겨울부터 꾸준히 슬렉스를 입었다보니, 아침 저녁으로 쌀쌀함을 느낄 때마다 '이제 스키니진은 갑갑해서 어찌 입나' 걱정을 하게 된다. 다리의 선은 적당히 드러내면서 품은 조이지 않아 예쁘고 편한 이 슬렉스를 두고 내 어찌 다시 스키니진을..! 말은 이렇게 해도 입을 옷이 없다 싶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꺼내 입을테지만. 아무튼 슬렉스에 낭창낭창한 긴팔블라우스 한 장만 입어도 딱 좋은 지금의 계절감이 좋다. 고마운 날씨들이 이어진다.

 

 

 

/ 금요일 낮의 쇼핑셔틀. 한 두달에 한 번씩 수박이랑 쇼핑을 간다. 나는 거의 수박이의 옷을 봐주고 골라주는 역할이다. 이렇게 한 두달에 한 번씩 수박이랑, 두툼이랑, 애인이랑 쇼핑을 간다. 나는 매번 옷을 봐주고 골라주는 역할.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쁘게 입는 것이 좋다. 예쁜 몸의 선을 가졌는데 거지같이 입고 있으면(넝마같은 옷이 아니라 아무튼 내가 싫어하는 요소를 갖춘 옷을 말하는 거다.)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 그 몸을 가지고 왜! 어째서! 이렇게 분한 심경이 된달까. 이날은 수박이 옷 몇 가지를 골라주고 나도 마음에 들어서 같은 레글런티를 사려고 했는데 수박이가 자기 옷과 같이 계산해주었다. 지난번 홍대AA에 갔을 때에도 9천원 짜리 쇼츠 사주고 나는 밥값으로 3만원을 썼었는데(...) 이날도 만이천원짜리 티를 선물 받고 밥값으로 만오천원을 썼다. 이상하다.

 

 

 

/ 방금 트위터에서 본 한 줄에 마음이 아차 멈췄다. '자신을 낳아 준 엄마도 아니고, 같은 종도 아닌데, 이렇게 완전히 믿는 거 보면 짠하다.'고. 일상에서 이들을 만나는 순간마다 울컥한다. 대개는 반갑고 기쁜 마음이지만 어떤 포인트에서 종종 마음이 솟구친다. 맹목적이고 열렬한 애정을 이들은 아낌없이 한 대상에게 쏟는다. 자신이 죽기 전까지, 자신이 버림받기 전까지 아니 버림받은 후에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은 오늘도 열정적으로 내 콧속을 탐험하는 인하대 후문 거주, 장모치와와 2살, 송코미(ㅋㅋㅋ)와 이 핥음이 마냥 좋은 나의 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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