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한여름

재이와 시옷 2023. 7. 27. 12:49

 
/ 조언이랍시고 충고랍시고 또는 그냥 하는 말이라며 내뱉을 때는 아무런 자각도 없었던 많은 말들이. 그때의 의중은 내가 하는 말과 생각이 늘 옳다는 가정이었다. 정답이라고 여겼는데 처음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삼켜야 했다. 목에 턱 하고 걸려 넘어가지지 않는 걸 꾹 참고 꾹 삼켰다. 내가 틀렸으니까. 서른을 한참 넘겨 인간관계에서 무언가를 깨우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에라도 깨달아 다행이었다고 스스로 위무했다. 
 
 
 
/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부정적인 것들은 최대한 흡수하지 않으려 애쓰곤 하는데, 생활이란 것은 늘 일과 돈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어서 일하며 돋아나는 적갈색의 감정들을 다스리려 심호흡을 크게 하는 요즘이다. 동료가 밉다가도 짠하고 짜증이 나 목소리가 커지고 이래서 내게 남는 것이 뭐가 있나 괜찮다 숨을 크게 쉬고의 반복. 
 
 
 
/ 친한 친구 두 명을 올해 들어 처음 만났다. 친구 한 명의 칠월 생일을 맞아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모두 제각각인 세 명이서 시간을 맞추고 맞춰 공기는 끈적하게 달라붙고 우산은 쓰나 마나 하게 비가 흩뿌리던 말 그대로 날씨가 거지 같던 금요일 저녁 한남동에 모였다. 오랜만에 우리들 만나서 외식한다고 쫄쫄이 레깅스 아닌 조거팬츠 운동복 입고 와준 생일자 먼지엄마, 지금 어디에서 살고 지내는지 안 물어봐서 몰랐는데 우리들 만난다고 일산에서 오가는 수고를 마땅히해준 코인왕자님, 저녁 8시 반까지 10시간이 넘는 그날의 근무를 모두 마치고 10만 원어치 저녁까지 산 대단한 나까지. 야무지게 먹고 양껏 마시고 많이 웃은 밤이었다. 펍으로 이동하며 길바닥에서 찍은 흔들리고 못생긴 사진이 전부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 애인과 반년만에 지압을 받았다. 지난 지압의 경험으로 득한 조언은 1.자세 안 좋음 2.물 안 마셔서 혼남 3.소화기관이 약함 이 정도였는데 오랜만이어서인지 근래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피로했어서였는지 새로운 꾸중을 득하고 말았다. 4.기립근이 심각하게 뭉침 5.여전히 물 안 마셔서 혼나는데 이젠 따뜻한 물로 많이 마셔야 한다고 새로운 퀘스트까지 얻음 6.머리통에도 근육이 뭉쳤다는 말을 듣고 세상 기함 7.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권유까지 받음. (...) 이 정도면 정상적인 신체라고 볼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러해서 24일에 러닝을 다시 시작했다. 
 
 
 
/ 팔월까지 나흘정도만 남겨둔 지금은 한여름이 맞겠지. 공식적으로 장마는 종료되었고 지금 이 시각 바깥의 기온은 33도다. 유월 이후 오늘에 오기까지 여전히 일을 하고 연애도 열심히 하고 사모님돈가스도 먹고 쇼핑도 하고 애인에게 선물도 하고 선물을 받고 그렇게 어느 해의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칠월을 보냈다. 잘 살아내고 있다.
 
 
 
 
 
 
/ 겨울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12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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