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팔월과 구월과 또는 시월에

재이와 시옷 2023. 8. 9. 00:16

 

 

 

/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잘못이고 내가 미워하는 것 역시 합당하다고 학폭 가해자 같은 마인드를 갖게 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그 사람(들) 잘못이니까. 1)그래도 애는 착해 2)착하기만 하고 일을 못하면 그건 못 된 거야 3)그래도 애는 착해의 악순환. 일과 돈이 크로스로 묶여버리니 부정적인 감정의 처리값이 쉽게 계산되지 않는다. 닮아있는 일을 십여 년째하고 있는데 이제 거의 한 지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통달과 해탈의 지점이 아닌, 환멸과 포기의 지점이라는 게 약간 문제라면 문제다. 문자 그대로 배운 게 도둑질인데 이 도둑질이 싫어지면 어떡하지 평생 크게 해보지 않은 뭐 해 먹고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그렇다고 지금 하지도 않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가방도 사고 책도 사고 애인 선물도 산다. 임여사의 고급 화장품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역시 나의 값진 노동의 결괏값이다. 그러니 여전히 일을 하고 돈을 번다.

 

 

/ 8월에는 애인과 이틀 이상의 휴무를 일 년여만에 맞춰 가까운 가평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남들 바다수영 할 때 둘은 열심히 일하고 입추 지나 처서가 되어서야. 조수석에서 살뜰하게 내비를 봐주고 싶었지만 진성 길치인 애인의 서포트는 조용히 하는 것보다 못한 것이었기에 방해가 될까 음악도 틀지 않고 얌전히 과자를 맥여주는 것으로 내 역할을 했다. 물론 과자도 내가 훨씬 많이 먹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틀이었다. 초행길이라 유턴을 수없이 했지만 그 지나가는 길에 저기 가보자 하며 들른 모든 마트, 카페, 음식점이 다 좋았다. 남들보다 늦은 물놀이는 펜션 수영장에 설치된 미끄럼틀로 그 욕망을 채웠다. 테라스에서 고기를 굽다가 사마귀도 만나고 역대급으로 잘 끓여낸 나의 짜파게티를 애인이 한입도 먹지 못하고 먼저 잠들어 버렸지만, 다음날 오전 혼자 깨서는 허기지다고 온 집에 참기를 냄새를 채워가며 달걀프라이 여섯 개를 부처 먹은 애인이지만,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오래오래 잊지 못할 긴- 순간들.

 

 

/ 약 20년 만에 귀를 더 뚫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중학생 어느 여름방학에 처음 귀를 뚫었었다. 두발자유는커녕 교복 치마 길이와 계절별 스타킹 색상으로도 혼이 나는 교칙이 있었다. 귀를 뚫은 게 표가 나면 안 돼서 뒤에서 반대로 귀걸이를 밀고 앞은 투명 고무로 막는 눈속임을 썼다. 매번 들켜서 귀걸이를 빼고, 갓 뚫은 생살은 금세 아물고, 그 자리를 그대로 으득 다시 스스로 뚫고, 또 들키고, 덧이 나서 또 스스로 뚫고를 거의 열 번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쌍의 자리만 갖고 이십 년을 지냈는데 '조금 위로 한쌍 더 뚫을까' 생각만 몇 달을 하다가 쫄보라서 피어싱샵 앞에서 발길을 돌리길 몇 번. 어느 날 성수동에서 감자탕에 소주를 애인과 야무지게 먹고 마시고 나오니 운명처럼(아님) 맞은편에 떡하니 피어싱샵이. 술.. 많이 드셨나요 묻는 사장님께 '어.. 제법이요?' 대답하고 괜찮다 이김에 뚫어야 한다며 애인까지 같이 뚫었다. 애인둥절. 글을 쓰는 지금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크게 덧나지도 않았고 뚫은 직후부터도 크게 아프지 않았어서 아주 만족 중이다. 다음엔 연골을 같이 뚫자고 하면 애인이 같이 가주려나. 

 

 

/ 뒤늦었지만, 올해로 '명절에 차례 안 지내는 집 그룹'에 우리집도 들어가게 되었다. 한 달 만에 다시 가진 애인과의 사흘 휴무는 명절답게 평소보다 더 많이 먹으며 아주 잘 보냈다.

 

 

 

 

/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아직도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즐겁고 이 시간을 미리 약속하고 기다리는 나날은 여전히 설레며 마주 보고 있는 이 순간도 하물며 떨어져 각자 삶을 사는 일상까지도 당신 덕분으로 안온하고 행복하다고. 처음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봤던 칠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당신은 나와 같다고 대답했다. 덧붙여 그래서 그 사실이 감사하다고. 
다시 일상을 산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가방도 사고 책도 사고 애인 선물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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