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seek; let 26

02_그 전봇대에 붙어있던 스티커가

그 전봇대에 붙어있던 스티커. 그 스티커를 기억한다. 그 스티커가 홍보하고 있던 업체의 이름이, 곧 우리의 그 자리 이름이었다. 우리는 그 자리를 그 이름으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바라보던 꼭대기의 달이 꼭 저렇지 않았었나 하는 오해를 지금 한 번 해본다. 사람들은 이해하는 것이 아닌 오해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문을 답처럼 던지던 작가 박민규의 그 말마따나. 열아홉의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해 여름의 당신의 모습은, 귀를 덮지 않게 정돈된 머리칼과 안경이 걸쳐진 매끈한 콧대, 품이 조금 커 보이던 리바이스진과 폴로 피케티. 종종 모자를 들고 있었다. 집에서 요리를 하고 온 날이면 손에서 식초 냄새가 났었다. 그것도 2배 식초. 나갈 준비를 하며 손 씻기를 반복했지만 새큼한 냄새가 쉬이 가시지..

seek; let 2013.02.15

01_비겁일 수 있었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는데. 늘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도리질을 하며 치워냈던 지질한 그 미련을. 아직 아이임이 명백한 이 미성숙한 짐들을 어떻게 수납해야 하는지 가이드북 없이 스스로 알아가는 데에 걸린 시간이 햇수로 3년. 광활한 그 범위를 모두 숙지하긴 어려워 머리말만 수십 차례 읽고 있다. 읽고 또 읽어보고 주변에서 일러주는 나름의 도움들을 이제는 조금씩 내 메모장에 옮겨 적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겨가고 있는 듯하다. 믿기지 않는, 믿을 수 없는 현실임을 부정하며 지키고자 했던 건, 당신이기도 했지만 나의 기틀이기도 했다. 인정하고 나면 그 후에 걸레처럼 처박힐 병신 같은 행적들을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아 한사코 손사래로 받아쳐냈던 시간. 이제는 조금 알겠더라. 어쩔 수 ..

seek; let 201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