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seek; let 26

14_어떻게 해도 안되는 게 있어

망설임이 무안했다. 실소가 한 번 지나간 자리에 가로로 닫은 입이 남았다. '가장 추운 일요일.' 몇 달 전 찾아온 시시한 겨울 중 오늘, 가장 추운 하루가 될 것이라 했다. 패딩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아는 가족과 친구들은 밖에 나가는 것을 극구 만류했고 나는 겁이 조금 났지만 오기를 부렸다.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의 이틀 전, 옷을 미리 꾸려보았다. 시시한 겨울이라고 비아냥대기엔 다소 민망한 다섯 겹의 차림이었다. 거울 속 나는 마치 뭉툭한 지우개 같았다. 검은색 점보 지우개. 의식적으로 마음이 가라앉는 날엔 검은색을 마구 걸친다. 감춰지고 싶고 숨고 싶고 사라지고 싶어서. 찬 바람이 볼을 에는 것 같았다. 머플러로 차마 다 가려지지 못하고 드러난 피부에 바람이 ..

seek; let 2016.01.24

13_닮은 얼굴

'별 수 없잖아.'라는 문장으로 버리 듯 잘라 낸 인연들이 몇 있다. 나의 모자람과 못됨을 꿋꿋이 확인해 가며, 그렇게 치워 낸 시간과 사람들. 나는 매일을 끊임없이 나를 견뎌내고 있다. 당신을 잃은 후 매일매일.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같은 질문, 같은 이유로의 반복. 나는 사랑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어떤 면에서도 너의 문제일 수 없다. 오롯하게 나만의, 나의 문제와 결함이니까. 닮은 얼굴을 만났다. 무척이나 닮은 얼굴. 당신의 가족을. 정이 많은 당신은 지인들을 챙기는 일에 스스럼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당신 주변엔 늘 사람이 많았다. 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유독 당신이 좋아하던 친구였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밤 열한 시가 넘어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함께 일한 그 친구와..

seek; let 2015.07.21

12_생일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요. 기억들에게 되물어 보는 빈도가 잦아졌다. 그만큼 시간이 흐른 탓도, 또 그만큼 당신으로부터 내가 무뎌진 탓도 있을 거다. 반말과 높임말을 내 멋대로 섞어 사용했었지.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렇게 억지스럽고 우악스럽게 굴었는데 어떻게 당신은 내 곁에, 언제는 저 떨어진 발치에 오래 머물러 있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랑이었겠지. 그것 외에는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분명하고 정확한 사랑이었을 테지. 뒤늦은 감사, 뒤늦은 후회, 뒤늦은 사랑. 언제나 당신보다 박자가 느린 나는 이렇게 엉금엉금 뒤를 좇는다. 감사도 후회도 모두 담은 사랑까지. 아직도 불쑥불쑥 눈물이 난다. 정말이지 불쑥. 어느 밤엔, 어두운 당신 사진을 밝게 명도를 끌어 올려 다시 보았는데, 프..

seek; let 2014.12.05

10_아직도 궁금한 이야기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만큼 당신 생각을 어쩌면 뒤란에 두었던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나는 그만큼 상처에서 멀어졌던 걸까 더불어 생각해 본다. 그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라면 아직도 밤이 이리 고통스러워서는 안 되는 걸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한다. 끊임없이, 잇따라. 그리고 깨닫는다. 이미, 당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그날, 물어보고 싶었다. 이야기 사이로 내 이름이 오가고 있던 그때에. 당신과 함께했던 마지막 여행담을 늘이며 순식간에 그때 추억으로 빠져들고 그만큼 쓸쓸해하던 그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나누던 그 이야기들에서 나의 이름이 오가던 그 때에, 물어보고 싶었다. 물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고 그 밤이 지난 뒤부터 지금까지 한동안 아주 오래오래 후회한다. 단 한 문장이었다..

seek; let 2013.09.06

09_감당해야하는 그 밤들에 대해

알아채지 못했던 몇 번의 사인과 몇 번의 밤들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 한 번 더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어긋나는 뼈마디들로 비명이 으드득 비집고 나와 터져도 한 번쯤 다시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쉬운 눈초리로 외면했던 그 간절한 사인들이 이제는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것. 그때 그것들을 알아보았더라면, 오늘이 오기까지 혼자 감당하는 나의 이 밤도 없었을 텐데. 없었을지 모르는데. 결국엔 이렇게 인과의 설정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맥주 여러 병을 비우고 침대에 모로 누웠다. 두 손을 포개 가슴 위에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뱉지 않고 꾸욱 시간을 보냈다. 수 초뿐이 지나지 않았는데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물 속도 아닌 정돈되지 않은 내 방일 뿐이었는데도 호흡할 산소의 부재를 견..

seek; let 2013.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