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이 무안했다. 실소가 한 번 지나간 자리에 가로로 닫은 입이 남았다. '가장 추운 일요일.' 몇 달 전 찾아온 시시한 겨울 중 오늘, 가장 추운 하루가 될 것이라 했다. 패딩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아는 가족과 친구들은 밖에 나가는 것을 극구 만류했고 나는 겁이 조금 났지만 오기를 부렸다.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의 이틀 전, 옷을 미리 꾸려보았다. 시시한 겨울이라고 비아냥대기엔 다소 민망한 다섯 겹의 차림이었다. 거울 속 나는 마치 뭉툭한 지우개 같았다. 검은색 점보 지우개. 의식적으로 마음이 가라앉는 날엔 검은색을 걸친다. 감춰지고 싶고 숨고 싶고 사라지고 싶어서. 찬 바람이 볼을 에는 것 같았다. 머플러로 차마 다 가려지지 못하고 드러난 피부에 바람이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