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가 움직여'
대화를 하다가 순간 멍해졌다. 별 것 아닌 말일 뿐이었는데 네 번 정도를 같은 소리로 따라읽고나니 더없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흉터가 움직인다, 라니. 흉터가 움직였다, 라니. 아- 흉터는 움직이는구나 움직이는거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의 갈퀴가 찢어졌었다고 했다. 빵-하고 작은 총탄에 의해 구멍이 나듯 그렇게 찢어져 얼기설기 근육들이 애써 모여 만들어낸 환생의 조각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이윽고 다른 손 손가락 끝을 움직여 3센치 가량 위를 가르키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흉터가 여기에 있어. 분명 이 아래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야. 이상해. 흉터가 움직여." 당연한 소리를 뭘 그리 놀라워하냐는 듯 실소를 뱉고 이야기해줬다. "살가죽이 자라나니까 그렇지. 그때의 너보다 지금의 너는 키도 이만큼 자랐으니까 당연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살가죽도 늘어나서 자리가 바뀌는거지. 그러니까 움직이는거지."
흉터가 움직인다 라는 말이 어떤 참척이 되어 들려올 줄 예상 한 점 못했는데. 빠르게 재생의 온기가 닿지 못한 생채기에는 보기에 그닥 고깝지않은 모양새의 어떤 흔적이 남는다. 우리들은 그것들을 상처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통이라 부르기도 하고 죄책이라 부르기도 하고 자책이라 부르기도 하고 상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래 그건 흉터다. 흉의 자리. 아름답지않은 어그러진 것들의 자리.
분명한 흉터를 예쁜 이름으로 불러주었었다. 거울 속에 들어찬 회색낯빛의 나를 바라보면 그 말들이 다시금 귓바퀴에서 재생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래 이 흉터도 처음의 자리는 눈썹 바로 위 언저리였을지 몰라. 키가 자라고 얼굴이 자라고 내가 자라나면서 그 자리가 이마 가운데로 움직인 걸지도 몰라.
분명하게 어그러진 그 자리를 보고 보조개, 라고 말해주었었다.
덜렁거리는 성격이 일순 조심성이 없는 지금에의 습관이 아니라,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태어난 본래의 기질인냥 으쓱하며 변명처럼 이야기했었다. '걷지못하던 갓난쟁이일 때 방안을 기어다니다가 그만 미끄러져서는 자개장 손잡이에 이마를 찢어먹었다지 뭐야 저 혼자. 애기 때부터 난 이렇게 제멋대로였나봐' 웃던 얼굴이 기억난다. 가만 손가락을 갖다대곤 '이마에 보조개가 있네 예쁘게' 라고 말해주었었다.
내겐 내가 가장 잘 알고있는 흉터가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아무도 모를 그런 흉터가 내게 있는데
이 흉터도 언젠가는 보조개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던 그 날처럼 예쁜 모습으로 안아질 수 있을까
이 흉터도 움직일까
꿈을 꿨다. 또 한 번 생생한. 처음엔 꿈인줄 모르겠더니 이제 꿈에서 당신을 만나면 '아, 내가 꿈에 있구나' 하고 알겠더라. 꿈에서나 만나 볼 당신이라는걸 이제는 내가 알겠더라. 깨고싶지않은걸 찢어진 마음을 끌어안고 기신기신 악다구니를 쓰다보면 이불을 두팔로 꼭 잡아쥔 채 붙들어맨 내 꼴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렇게 꿈에서 당신에게서 깨어나더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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