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

다이어리를 펴보지않고

재이와 시옷 2013. 1. 15. 17:38



다이어리를 펴보지않고 써보는 그간의 기록.
이러다 뻐끔뻐끔 혼자 골몰해하다 빼꼼 다이어리를 펴볼지도 모를 일이지마는, 그래도 기억에 한 번 의지해서 적어보아야 겠다.


사랑하는 계절과 달(月)이 있는 반면, 숫자와 영어 철자만 보아도 먹먹해지는 달과 계절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이 모순의 핑계를 어떻게 찾아 적어야할까. 분명 사랑하는 계절이었는데, 더없이 기다려지던 풍요의 계절이었는데, 글쎄 지금은(저기 언제부턴가) 체감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 속도를 마주보기가 어려워졌다. 말들과 얼굴이 계속 생각이 나서.



근무시간에 적는 짧은 포스팅은 설레며 신난다.
내 바로 옆자리던 팀장님이 한 칸 옆으로 자리를 옮겨 가셔서 물리적으로는 분명히 멀어졌는데 유려하면서도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오피스책상은 어째서인지 멀어질수록 내자리 모니터가 더 분명히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 팀장님 자리에서 보고서 컨펌받다가 내자리를 보고는 깜놀. 와이드한 모니터에 내가 띄어놓고 온 트위터 페이지가 적나라하고 뻔뻔하게 보이는게 아닌가! 애니웨이, 지금은 오늘의 업무를 94% 마무리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딴짓면죄부를 주기로 한다. 


가장 가까웠던 주말, 토요일에는 맛있는 라멘집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뽀얗고 진한 고깃국물이 크게 감동이지않아 일본식라멘은 찾아먹지 않는데, 꼭 같이 와보고 싶었다는 설렘반 걱정반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작은 그 가게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마지막 장면 즈음에 이선균과  임수정이 식사를 하러갔던 음식점의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아주 흡사했다. 창가자리를 보는 순간 영화의 마지막 씬이 떠올랐고 따뜻함이 함께 터지면서 '마음에 드는 장소다' 라는 결론이 단숨에 내려졌다. 맛도 좋아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웠다. 식재료들에서 싸-하게 불맛이 나는걸 좋아하는데 갓볶아진 신선한 채소들에서 불맛이 났다. 


임여사가 더치원액을 어서 사달라고 했는데 통장에 만 2천원밖에 없다.


망할 인센티브가 한 번에 나오지않고 4번에 나누어 지급된다고 한다. 무슨 내가 몇백만원을 받는것도 아니고 몇십만원 정당하게 받는다는데 뭐이리 제약이 많은지. 가난한 중소기업의 비애구나.


일요일에는 집 밖으로 한걸음도 나가지않았다. 
살이 쪄버렸는데 아무래도 연말과 연초의 술살같다. 혜자는 술마실 돈으로 그놈의 오리털패딩을 사입으라 했지만 금요일에 마시는 술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난 금요일에 좋은 사람과 맛있는 술 한잔(뭐 한잔은 아니지만) 하는 것이 좋다. 아주아주.


패턴과 색이 예뻐 덜컥 사버린 스커트의 품이 너무도 요상해서 입어볼 때마다 속상하다. 수선비가 조금 들어가더라도 알맞게 줄여야겠다. 만 2천원이면 줄일 수 있겠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잃어버린 장갑의 부재가 매일매일 커지고 있다. 사랑스러운 개발팀 대리님의 장갑이 마음에 꼬옥 드는데 어디서 샀냐고, 나도 그 똑같은 것 사고싶다고 물어보는게 너무 쑥쓰러워 그냥 맨손으로 찬공기를 휘저으며 돌아다니고 있다. 핸드폰 메모리에 있는 5기가 가량의 음악들을 보내주면서 슬그머니 물어봐야겠다. 손이 너무 차다.


매거진을 사러 들른 서점에서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 중인 신경숙의 외딴방과 박민규 소설 한 권씩을 더 담아왔는데 사무실 책상에 올려놓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팀장님이 뭐 그런 책을 읽느냐며 코웃음 치셨다.
"무슨 왕따방이라는 책을 읽어 찬숙씨는"
아이고 참


예쁘게 입고왔는데 어디 자랑할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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