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

현관 앞 두 발자국

재이와 시옷 2013. 1. 4. 01:18

 

 

 

 

 

 

 

 

 

 

새벽 늦게 잠이 들었다.

2013년 1월 1일이 되던 12:00분에 임여사와 울집두툼이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식상하지만 따뜻한 인사를 한마디씩 건네고 내 방으로 돌아와 오래오래 잠에 들지 못했다. 피곤한 것은 맞는데 요즘은 도통 오래, 잘 자지 못한다. 오후 12시쯤 엄마의 기상나팔 버금가는 깨움에 눈을 떴다.

 

신정에도 어김없이 출근을 한 울집두툼이의 빈자리를 안쓰러이 여기다 무릎 앞으로 바짝 차려진 점심밥상에 모든 근심을 잊고 임여사와 단둘이 식사를 했다. 나는 임여사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너무 좋다. 두부가 김치보다 많은, 두부라면 환장하는 딸을 위한 맞춤 찌개. 

 

임여사와 사우나에를 가려 했는데 나태의 위용을 어김없이 뽐내는 잉여력 만렙 딸은 전기매트 위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목욕가방 챙겨들고 나서는 임여사를 현관에서 배웅하곤 방으로 돌아가 정성스레 카메라의 먼지를 닦았다. 오랜만에 수동렌즈를 마운트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밤새 바람에 시달린 철문 아래 고드름이 맺혔는지 열리는 문에서 끼가가각 앳된 비명이 터졌다. 열린 현관 발치 아래 해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와, 오후구나.

슬리퍼에 발을 욱여 넣고 수면바지 차림을 한 이상한 여자는 현관자리를 몇 발자국씩 서성이며 그 시간의 씬들을 담는다. 애정없던 이 동네가 아니, 이 집이 이제 좀 마음에 들어지려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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