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

그렇지않은 그런 것

재이와 시옷 2013. 1. 30. 23:00

 

 

"난시가 무척 심하시네요."
- 네, 마지막 검사 때도 그 얘기 들었었어요. 제가 난시가 무척 심하대요.
"네, 정말 심하신데요 렌즈 끼세요?"
- 아뇨 껴본 적도 없어요.
"그럼 평소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안 불편하세요?"

 

안 불편했는데.
환하고 또 환한 안경점 내부의 형광등 아래 적나라하게 피부 잡티를 보여주는 거울 앞에 서서 눈을 몇 번 껌벅거리다 대답 대시 속말을 뱉었다. 아, 나는 바르게 보는 것에 대해 욕심히 전혀 없는 사람이라서요. 

 

근래 몇 달 동안 시력이 많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두 달 전부터는 가만 앉아있어도 아랫허리 왼편이 저릿저릿 거리는 것이 '몸이 좀 망가진 것 같은걸' 이라는 체감이 실로 들어 마사지까지 받고왔다. 생애 처음 받은 전문가의 마사지는 지옥 문턱 앞에 나를 내려놓더라. 뭉쳐진 근육을 살덩이의 주무름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닌 뼈의 면들을 내리 눌러 꾸욱 풀어주게 되는데 왼쪽 어깨를 마사지하던 마사지사는 읔-하는 탄식을 뱉었다. 뼈가 근육을 눌러내지 못했다. 어깨가 너무 굳어버려서.
들어가지 않는 뼈의 무게와 짓눌리는 각목같은 근육이 서로 빗나가며 나만 죽어나고 있었다. 
윽윽윽 너무 아파요 아파 아파요 아프다구 아프다니까아아아- 샵을 나올 적엔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정신이 없어 은연중 말을 놓아버려 죄송합니다" 아무튼, 몸이 좀 이상해진 것 같다.

 

"안경 끼고 나오는 시력을 지금 보시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높여드릴 수는 있는데 그러면 앉아서 일하시다가 일어서지 못하실 거에요. 너무 어지러워서 막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투블럭컷을 야무지게한 안경점 오빠저씨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 네 괜찮아요 이 정도만 잘 보이면 돼요. 더 선명하게 보이는게 되려 이상해요. 감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멀리, 진하게, 분명하게, 선명하게, 잘 보아서 무엇에 쓰리. 이상하고 무섭다 조금. 밝은 낮, 해 아래에서도 올곳 바라보는 것이 낯선 나인데 낮이나 밤이나 모두 선명해져버리면 어느 곳에도 눈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아. 종일 빗겨나가는 시선과 시선 사이에 우두커니 서있기만 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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