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글이든 쓰고 싶어 가라앉는 눈꺼풀을 고사하고 컴퓨터 전원을 부릉부릉 키웠는데 글쎄, 두 단락 넘어가는 글도 막상 써내지 못하겠지 라는 단념에 오래도록 키보드 위에 손이 머문다.
별 일도, 놀라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아니 그러니까 어제는 월급날이었고 '그래 결국 내 주제는 이 정도인거야.' 라는 자가체념을 종용하는 숫자들이 급여명세서에 열을 맞춰 서 있었다. 경례를 붙이는 듯 보였으나 그것은 예가 아닌 서명을 재촉하는 회계적 수치들에 불과했다. 애초 협상이란 것은 없었고 테이블 위엔 설득을 가장한 강압이 뚝뚝 날카롭게 갈린 우박처럼 떨어졌다. 나쁘지는 않았다. 좋을 것도 없었지만 이 정도의 깜냥과 적당한 성실함으로 주40시간 근무에 대한 보상은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학점과 맞바꾸며 개처럼 알바에 매진했던 스무살 때의 급여에 비한다면야 벼락부자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송구스러움이 되려 화가 나는 거다.
철원 저 어디에선 가족의 신뢰와 거짓없음을 설파하며 당신의 서운함을 노골적으로 비추는 아버지가 있었고 서울 이곳에선 말해 무엇하냐며 이야기를 풀어보려는 딸의 말을 개똥만도 못하게 외면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씨발 가난해서 그렇다. 아비와 어미는 다 잊은거다. 천을 넘어가는 학자금 대출의 빚을 오롯이 책임지는 스무살때부터의 딸이, 두 번에 걸쳐 그네들에게 내 이름으로의 대출을 더했다는 것을. 숫자들은 내 명의 계좌에 남겨졌고 빛보다 빠르게 부지런한 공무원 양반들은 앞다투어 내 계좌를 털어갔다. 백오십이 조금 넘는 급여를 받으며 백십만원 가량을 그저 빚의 몫으로 갚아내고 있는 딸을.
삼만원 하는 싸구려 겉옷이라도 사왔다치면 그 예쁘던 눈이 무엇보다 날카로워 지는거다. 설거지를 하며 미운 말이 하수구를 타고 내려간다. 처입고 처메고 다닌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왔음을 내 귀로 증명했을 때의 속상함이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이곳이 싫다.
불과 스물 여섯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그러니까 어제, 덕분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말들을 조분히 읊으며 예쁘게 눈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개소리였다.
난 결국 이렇게 구겨진 영수증 같은 사람인데.
각질이 잔뜩 일어나 추잡한 손톱의 푸른잿빛의 폴리쉬가 군데군데 벗겨져있다. 왜 너마저 이렇게 애처롭니.
'⌳ precipi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더하고 하루 (0) | 2013.03.31 |
---|---|
지금은 없는 것 (0) | 2013.03.31 |
나는 너희들이 참 좋아. (0) | 2013.03.12 |
띄엄띄엄 (0) | 2013.03.11 |
도배된 생활 (0) | 2013.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