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4) 그렇게 그런 일들

간밤의 인터뷰

재이와 시옷 2013. 8. 25. 22:01

 

그랬을까
또는 그랬었을까

 

하하하 한 번 떠들썩하게 웃어버리고 지나갈 법한 그저그렇게 왁자지껄한 일들도 있었다. 낯선이와의 짧은 조우도 있었고 또 낯선이와의 조우도 있었지. 익숙한 이와의 긴 이야기들도 있었고 익숙하지만 편치만은 않은 이와의 적당한 거리도 있었지. 모두 쓸모없는 것과 것.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 않겠냐며 가볍게 예스라고 퉁쳤지만 사실은 안다. 그렇게 가벼이 볼 수 있는 성질이 못되거니와 내게 그런 깜냥이 없다는 것도. 일주일 정도가 지난 지금, 며칠 전에는 분명 설렜던 기억이라며 변태처럼 종종 흐흐 웃었던 것들이 이젠 얼굴도 그 때 나누었던 말들도 하등 기억나질 않는다. 이렇게 얄팍한 사람이었나 싶지만 고민하기에 앞서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도 같아 긴 질문의 허리를 중간 잘라버렸다. 누구든지 진짜의 진실과 당당히 마주앉기엔 스스로가 껄쩍지근 할테니까. 아무렴.

 

네 개의 발치를 끝내고 주말, 본격 철사를 끼우는 교정에 들어갈 예정인 회사 친한 대리님의 회포를 위해 우리들은 금요일 퇴근 후 고기를 먹으러 갔다. 이렇게 진한 동료간의 정이라니. 교정기 끼우고 오랫동안 고기를 못 먹을까봐 같이 고깃집에도 가주고 말이야. 
1차를 지나 자연스레 2차로 장소를 옮기고 오징어회 두 점만을 먹었을 뿐인데 회비 초과라며 돈을 더 걷는 지경에 이르렀고, 평소와 비슷하게 취한 나를 비롯한 여럿이 집에 가기 위해 가게 밖에 나와있었다. 나는 취기로 급작스레 피곤이 몰려와 서있는 것이 고되 눈에 바로 띄는 건물 안 계단에 잠시 앉았다. 소음이 조금 멀어지는가 싶더니 아마도 일행들이 나를 놓쳤던 것 같다. 불쑥 눈 앞에 들어오는 그림자에 음? 되물을 새없이 그림자가 조용히 옆자리에 앉았다. 가게에서부터 지켜봤다며 자리를 옮기는 거라면 한 잔 더 같이 할 수 없겠냐 물었다. 본인은 스물 여덟살이고 수상한 사람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며. 오늘은 시간도 늦고 더 마시는게 힘들다면 연락처를 줄 수 없겠냐고. 다시 연락해 저녁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그런 보통의 소개. 나는 그 와중 내가 아닌 솔로 대리, 과장님들과 엮어줄 심산이었던 지 그의 나이를 듣자마자 "땡 탈락!" 이라고 외쳤다. 미쳤던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황한 그가 네? 탈락이요? 묻자 혼자 깔깔깔 웃었던 것 같다. 진짜 미친 여자로 봤을지도(...) 
이야기를 조금 길게 나누려는 찰나 "여기서 뭐햇!" 하는 앙칼진 음성에 놀라 고개를 드니 회사 언니가 내 팔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는 어물버물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언니의 쏘아보는 눈빛에 쫓겨나 듯 자리를 떠났다.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오후엔 으레 같은 고민에 빠진다. 술약속을 잡을 것인가, 단출하게 맥주를 사 집에 가서 마실 것인가. 그 날은 외식이 하고싶었다. 그래서 뽈킴을 영등포로 소환했다. 지난 달 내 월급이 나오기 전 나의 보릿고개 시절. 뽈킴과의 술자리에서 모든 차수를 뽈킴이 계산했기에 그래 좋아, 오늘은 내가 털리겠구나 라는 것을 체념하고 그녀를 만났다.
가볍게 '어백' 에서 회와 소맥으로 달렸다. 뽈킴은 그 날 집에 갈 방도가 없으니 새벽 첫차까지 본인과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적당히 마시고 전철타고 각자 집에 갔었으면 됐는데, 왜 내가 그 때 알겠다고 했을까. 미츠가즈그(...)
2차로 곱창집에를 갔다. 그날은 유독 영등포 골목 여기저기를 쏘다녔던 것 같다. 한 번 달린 소맥,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어 쉼없이 소맥으로 달렸다. 술 좀 마셨으니 술기운 좀 깨자며 노래방을 가볼까 거리를 걷는데, 전단지를 든 아저씨가 와 말한다. 이상한 곳 아니다. 우리집 정말 좋다. 놀다 가라. 종이를 보니 나이트인지 클럽인지 밤사인지 알 수 없는 정체성이 모호한 어떤 술집 소개가 있었다. 그 아저씨와 나란히 걷다보니 어느새 그 가게 앞이었다. '잠깐 들어가볼까?' 그 날은 둘이 왜 그랬는지 되게 충동적이었다. 왜 그랬겠어 취했으니 그랬지. 들어가보니 믹싱이 구린 음악이 빵빵빵 터지고 있었고 춤추는 스테이지가 가운데에 있고 주변으로 테이블이 있었다. 나이트와 클럽과 밤사의 중간 느낌. 사이드 자리로 안내 받고 맥주와 샐러드를 시켰다. 언제쯤 나가 춤을 출까 타이밍을 보는데 음악이 너무 구려서 뽈과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딱,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이오' 같은 상황이었다.


뽈과 내가 마주 보고 앉았고, 내 등 뒤로 남자 두명이 앉은 테이블이 있었다. 그쪽도 서로 당연히 마주보고 앉았으니까 한 남자와 내가 등을 마주댄 상황.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무대 본다고 몸을 그 쪽으로 틀었던 내가 '음악이 정말 구리지 않아요?'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진짜 왜그랬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말을 시작으로 테이블과 안면을 텄다. 대충 기억나는 바로는 세미스키니에 차콜색 무지티를 입고 나이키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우리집 두툼이 것과 같은 모델이었던 터라 그것으로 마냥 놀렸다. 아니, 예의없게 아무리 편하다고 이런 여자 만나는 데를(?) 쓰레빠를 신고 오다니! 하면서. 사는 곳이 어디랬더라 영등포와는 거리가 멀었다. 스물 여덟살이라 했고 이름을 말해주었는데 정씨였으며 이름은 회사 우리팀 사원과 같았다. 괜히 흠칫 놀랐음. 내게 어디 사느냐 묻길래 '월곡역'이라 말하면 단 번에 아는 이가 없어 '고대, 고려대역 그 쪽에' 설명하니 "고려대 안에 집이 있어?" 라고 되물었다. 그 땐 그게 왜 그리 웃기던지ㅋㅋㅋㅋ 정말 취했었군.


나와 뽈은 무대에 나가,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미친사람처럼 놀자 우힉힉힉 춤을 추고 있었다. 따라 나온 그가 가까이서 웃으며 물었다. "춤 잘 추는거 아니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 몸동작은 가관이었다. 진짜. 완전. 대박 못춰서 어이터진 내가 심지어 춤을 가르쳐주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그 때 그 분위기는 분명히 기억이 난다. 허리를 세워 자세를 잡아주고 어깨 튕기는 것을 알려주다 마주친 눈으로 둘 다 웃는데 살풋 설렜다. 기분이 좋았다. 그건 분명 인정. 그리고 다른 이야긴데 그 사람과 함께 있던 동생은 스물 다섯이었다. 내가 빠른 89라고 하자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한사코 누나라고 부르길 거부하더라. 내 주변 89년생들은 다 왜이러니 증말. 콱 그냥.
그 테이블에 아는 형이 일행으로 한 명 더 붙었고 그 사람은 자리 정리하고 합쳐서 함께 놀자 했지만 뽈킴이 씅이 나있어서 지금은 눈치가 보인다 설득하던 때에 더 놀자는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뽈킴은 '가자' 라는 말과 동시에 가방을 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그 와중에 나와서 새벽 네시까지 한다는 커피숍에 가 라떼와 녹차라떼를 사곤 사장님께, 바로 옆에 있던 육회지존의 길을 묻고는ㅋㅋㅋㅋㅋㅋㅋ 육회집에 가서 또 술을 더 먹었다. 아직 식지 않은 라떼를 옆에 두고 아쉬운 마음에 툴툴대던 내게 뽈은 말했다. "걔 진짜 너한테 꽂힌 것 같더라. 같이 있던 그 남자애도 이 형 지금 너한테 빠졌다고 막 그러던데" 불독같이 일부러 못생긴 얼굴을 하고서 '그럼 더 놀다 나오면 됐잖아!' 하니 "야 진짜 마음 있었으면 따라 나와서 번호 따갔겠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그냥 입다물고 있었다. 좋은 병과 약이시다 그래(...) 육회에 소맥을 먹고 뽈킴과 모텔에 가서 잤다. 세상에 맙소사. 아니 내가 왜 너랑! 토요일에 본인은 출근을 해야하는데 잘 시간과 장소도 마땅치 않으니 어서 방값을 계산하라며 무려 '쟈스민' 모텔에서. 계산할 때 내가 씅을 부리니 카운터에 계시던 사장님이 일부러 투베드룸으로 주시고 여자둘이라며 폼클렌징도 두배로 주셨다. 아이 감사해라. 핳핳핳핳핳핳핳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탔다. 동네로 착각해 조금 이르게 택시에서 내렸고, 길도 못찾는 어리버리이면서 저멀리 보이는 집 근처 아파트 길다란 건물만을 보고 당당히 걸었다. 조금 비틀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와중 따뜻한 라떼가 마시고 싶어져 이 미친 식욕의 뿌리는 어디인가 고민하던 찰나에 '저기요'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힐을 벗고 냅다 달려볼까 1초 고민을 했지만 패기돋게 휙 등을 돌려 쏘아보듯 마주봤다. 지나치는 길에서 봤다면 무시가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쳐다봤으리라 싶은 차림의 웬 안경낀 사내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저기요 말을 걸어놓곤 본인도 당황했는지 뻗은 손 그 모양 그대로.
왜죠, 라고 되물었다. 왜죠라니ㅋㅋㅋㅋㅋㅋㅋ 트위터를 너무 많이 했는가봐 왜죠라니. 아무튼 수학의 정석과도 같은 어떤 매뉴얼이 있으리라 확신이 설 법한 뻔한 문장들이 그 사람 입에서 떨어졌다. 조금 달랐다면, 안되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아쉬워는 할겁니다 라는 식의 뭐랄까 20퍼센트 병맛의 유머랄까. 
집을 찾아가는 길 동안 짧게 말을 나누었다. 본인을 서른다섯이라고 소개했고 나는 나의 직장상사와 거의 같은 나이라며 제게 이러시면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제 나이를 말했을 뿐인데ㅋㅋㅋㅋㅋㅋㅋ 새벽이었고 우리 동네엔 24시간 커피숍이 없었다. '라떼가 마시고 싶어요 따뜻한 라떼요' 미친 식욕을 가감없이 뽐냈다. 한 번 찾아나보자며 원정대 비스무리한 마음가짐으로 동덕여대 끝 골목까지 다다랐다가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싶지만 내 번호를 주었고 오늘 오후와 저녁에 나눠 두 번의 전화가 왔다. 나는 저장하지 않았으니 오롯이 뜨는 11자리 번호를 보고 거래처겠거니 하는 따분한 심정으로 볼륨키를 눌러 무시했다. 새벽의 문자함을 보니 집에 갈 들어갔냐는 메시지가 있었다. 같은 번호의. 아, 봉사활동을 간다고 했었다. 어느 나라였더라. 아무튼 며칠 뒤에 떠나니 그 전에 라떼를 꼭 먹자고 했었다. 그래 이게 이제 기억났네. 그렇게 되지는 않을테지만.

 

 

아무 생각 없었는데 재밌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적어놓고보니.
나름, 인터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