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미래
마흔 살 어느 날 저녁, 노을 내리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그 저녁 이전부터 나의 배우자일 지금 연인의 왼손을 잡고. 그 사람 오른손엔 차박차박 걷는 시츄가 묶인 개줄이 있다. 게으름 피우며 천천히 걷는 시츄를 다독이고 또는 닦달하면서 셋이서 공원을 걷는다. 곧 해가 완전히 지고 이제는 제 발로 걷기 싫다 버티는 시츄를 들쳐 안고 우리 집으로 간다. 개를 집에 내려두고 저녁은 나가서 먹자며 이렇게 저녁을 자주 해결했을 아마도 단골일 동네 작은 호프집으로 간다. 시원한 생맥주 두 잔 시켜 오늘도 고생 많았다고 잔을 부딪히며 건배한다. 나는 오늘 송방에서 어땠는지, 연인은 헬스장에서 별 일은 없었는지 시시콜콜한 말들을 나누며 양념치킨을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집으로 돌아오면 연인은 내 신발과 자기 신발을 닦아 정리하고 딛는 걸음마다 작게 어지럽힌 내 흔적들의 뒤를 쫓으며 귀여운 잔소리를 풀어놓고. 왼쪽엔 나 오른쪽엔 당신,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 아까 웃고 떠드느라 놓쳤을 또 다른 시시콜콜한 말들을 나눈다. 쉬는 날엔 같이 운동을 할 건지, 어느 동네에 놀러 갈지, 맛있는 술에 곁들일 메뉴는 뭐가 좋을지. 가깝고 다정한 기대를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해. 늘 그랬던 것처럼 나보다 먼저 눈이 감길 당신 이마에 뺨에 입술에 인사를 찍고 하루를 닫는다. 보통의 일상. 당신과 개와 함께 하는.
22 균형
평범하고 무탈한 일상에 괜스레 머쓱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브레이크 걸 듯 잠시간 멈칫하게 되는 일상들. 그 감각은 내가 너무 논다고 느껴질 때엔 발현되지 않지만, 내가 너무 일만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엔 용맹하게 솟아난다. 내가 스스로 나의 균형을 찾을 때. 내 자리에서 일을 하고 아주 또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칭찬받고 돈도 받는다. 바깥에서의 나는 그렇다. 그럼 다시 이제 나로서의 균형을 맞춘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술도 마시고 또 열심히 놀면서 돈도 쓴다. 출근길에 충동적으로 맥북을 챙겨 나왔다. 오늘의 일을 해내며 저녁이 끝나가는 시점엔 집으로 갈 것인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것인지 잠시간 고민도 했지만 지난주에도 같은 고민을 해놓고는 괜히 가방만 무겁게 이고 지고 출퇴근한 사람이 됐었기 때문에 오늘의 고민은 다소 짧았다. 퇴근 후 가뿐한 마음으로 약수역에 갈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버스 안에선, 무엇을 마실지 커피를 마실지 예전에 보니 병맥주도 있던 것 같은데 그것을 마실지 그래도 집에 사놓은 빅웨이브가 있는데 바깥에서 9천 원 주고 마시기엔 좀 아깝지 않을까 나는 카페인에 약하니까 디카페인으로 마셔야겠다 살찌니까 주전부리는 먹지 않는 게 좋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애초에 맥주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하며 카페에 도착을 했다. 맥주는 이제 팔지 않았고 나는 따뜻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초코견과류 쿠키와 함께 먹었다. 커피는 기분 좋은 구수함이었고 쿠키는 또 오랜만에 먹으니 아주 맛있었다.
23 탐구
해를 더할수록 예년보다 늘 조금씩 이르게 찾아오는 더위를 공기로 기온으로 느낄 때마다 여름이 싫다 길고 긴 여름이 싫다 그렇게 줄줄 늘여놓는다. 그리고 여름날의 당신을, 우리를 떠올려 본다. 여름에 만났고 여름에 헤어졌고 또다시 여름에 만나고 한겨울에 영영 이별한 당신을, 우리를.
작은 검색창에 이름 석자를 꾹꾹 눌러 적을 때 내 기분이 어떤지 알까. 당신을 찾는데 쓰이는 문자들이 몇 개 안 된다는 사실에 매번 분통이 터지는 걸 알까.
바깥에 비가 온다. 십 년 전 일기에는 그렇게 적었다. 비가 오는 날을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됐는데 그 이유가 종일 당신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같다고. 나는 십 년 전 일기에도, 당신을 잃기 전에도, 지금도, 같은 이유 안에 살고 있다.
24 운동
5킬로미터를 달린다. 다리를 멈추지 않고 호흡을 의식하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면서 깊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좋아서 달린다. 어떤 생각에 할당되는 시간이 고작 몇 초밖에 되지 않는다. 깊게 이어지지 않고 그래서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가만히 골몰하다 보면 끝내는 나를 괴롭히고 마는데 달리기에는 그런 게 없다.
인생에 해가 더해질수록 체력이 필요를 넘어 필수라는 걸 실감하면서도 바로 시작하지 못했다. 운동복 등 장비를 꾸리는데 돈을 쓰고 싶지 않았고 과거 헬스장 기부천사로 활동했던 이력도 있으니 그것도 싫었다.(지금은 헬스장이 운동 가성비의 끝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서 처음엔 맨몸에다 집에 있는 운동화와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동네 개천을 따라 달렸다. 무릎은 아프고 숨은 가쁘고 내가 너무 빠른 것 같고 안 쉬고 10분은 달린 것 같아서 내가 막 너무 대단하고 얼굴은 불타고 난리가 났는데 애플워치를 보면 3분이 지나있다. 세상이 분명 나를 속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열을 올리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오기를 부리고 하면서 개천 달리기를 느리지만 꾸준히 이어갔는데 한겨울엔 추워서 한여름엔 더워서 오늘은 일이 힘들었어서 오늘은 술을 마실 거라 등등등 다들 그렇게 살지 않냐며 합당한 핑계를 내세워 달리기를 오래 쉬었다. 한 달 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5킬로미터를 달린다. 30분 동안 다리를 멈추지 않고 호흡을 의식하며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빨랐으니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빠르겠다고 나를 괴롭히기는커녕 멋지다고 추켜세워준다.
25 약
잘 아프지도 않고 크게 다치지도 않아서 일 년 중 병원을 찾는 일을 꼽는 데엔 세 손가락만으로도 충분하다. 서른을 넘기고 몇 년 전부터 자잘한 잔병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병원을 찾을 정도는 아니고 하루이틀 잘 먹고 잘 자면 다 낫는다. 그냥 몸이 다시 좋아진다.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라 나는 약을 잘 먹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하니까 딸기맛이 나는 시럽 형태의 약을 숟가락에 짜 입안에 넣어주었다. 나도 갖고 있는 기억의 장면이다. 몸에 핀 열의 감각이 힘들고 무서워 빨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엉엉 우는 내가 있다. 엄마는 숟가락에 분홍색 시럽약을 올려 내 입 안에 넣었다. 나는 그것을 꿀떡 삼켰다. 삼켰다고 생각했다. 딸기맛이라고는 해도 약은 약이니까 딸기향과 약의 씁쓸한 향이 같이 뭉그러진 그것을 나는 목구멍 뒤로 넘기지 못했다. 분홍색 토를 했다. 모든 물약을 그랬다. 애는 계속 아프고 약은 못 삼키고 엄마도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혹시나 하며 알약 먹는 법을 알려줬는데 내가 물 두 모금에 알약을 꿀떡 잘도 삼켰다 했다. 동네 약국 선생님은 알약을 이렇게 잘 먹는 애는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그 후로 몸에 열이 피면 나는 알약을 먹었다. 목구멍까지 들이밀어진 숟가락에 힘들지 않아도 되었고 물과 함께 재빨리 삼켜진 알약은 씁쓸한 맛도 나지 않았다. 신기함을 기특함으로 여긴 나는 알약을 먹는 게 좋았다. 결정적으로, 약은 들지 않고 열이 올라 빨개진 몸뚱이로 악을 쓰며 우는 나를 어쩌지 못해 부둥켜안아 들고 같이 울던 엄마의 아픈 얼굴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돼서 나는 알약을 먹는 게 좋았다.
26 정답
상대평가가 이뤄지는 모든 시험과 과업들에는 정답이 명확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삶에선 그 명확성보다 유연성이 더 중요하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문제가 있으면 정답이 있다. 그래서 편하다. 눈에 보이고 소리 내 읽을 수 있는 문제들은 차라리 수월하다. 답이 번뜩 떠오르지 않더라도 유구한 공식이 있으니까. 그 공식에 기반해 풀이를 이어나가면 결국 정답에 도달한다. 깔끔하다. 하지만 오가는 것이 숫자가 아닌 마음과 감정과 관계에 대한 부스럼일 때 우리는 정답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 관계에 대해서도 유구한 공식이 있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1에 1을 더해 2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고 10에서 10을 모조리 빼 0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라는 건. 지금의 나는 여전히 과정 중에 있지만, 이보다 더 다듬어지지 않았던 때엔 관계 안에서 정답을 찾고 싶어 전전긍긍했다. 내가 주는 만큼 받고 싶었고 더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니 당연한 염치라고 여겼다. 내가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바라지 않았다. 나를 다 보여주지 않았는데 상대가 자신을 건네오면 대놓고 손을 뒤로 감췄다. 그런 것들이 나는 정답이라 생각했다. 정확히 주고받는 것.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진짜 정답이라는 게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오가는 마음들의 자취를 한 번씩 곱씹으며 이게 정답이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오답일지언정 이게 정답인 양 태연히 굴기도 한다. 여전히 알아 가고 있다.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다.
27 상
몇 년 전, 한 인터뷰를 보았다. 아시아권 선수임에도 눈에 띄는 기량을 보여주어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던 수영 경기였다. 그 종목에 참가한 그 선수는 메달권이 유력했고 경기 역시 멋진 모습으로 잘 마쳤지만 어떤 메달도 따지 못했다. 수상소감 인터뷰가 될 줄 알았던 자리는 부당한 처사를 당한 선수에게 심경을 묻는 인터뷰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건 명예롭지만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얼마 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감히 수로 재단할 수가 없어 경외심을 늘 갖고 있기에 경기 결과는 내가 다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tv 너머에서 나는 씩씩거렸다. 한데, tv 속 그는 덤덤히 말했다. 명백하게 부당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사안에 대해 열을 올려가며 소중한 에너지를 엄하게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밥도 잘 먹고 더 잘 자야지 또 앞으로 있는 일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그래서 오늘도 잘 자고 잘 먹을 거라고. 누구보다 그 상이 간절했을 사람이 괜찮다고 말했다.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곤궁한 가계살림에서 사랑이 받고 싶던 나는 어린 내가 쟁취해 부모에게 자랑스레 건넬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늘 고민을 했다. 참가 자체에 품이 들어가는 대회엔 못 나가지만 교내에서 일명 착하고 성실한 어린이에게 준다는 상들은 다 내가 받고 싶었다. 부모에게 손을 펴 보여주고 잘한다 예쁘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오랫동안 어떤 새겨진 신념처럼 지니고 있었는데, 나를 나로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게 되니 그건 거짓되고 비뚤어진 신념이란 걸 깨달았다. 선수의 그 인터뷰는 깨달음을 얻은 지 오래되지 않은 내게 힘을 보태주는 것 같았다. 나아간다는 건, 전진이 아니어도 일시 멈춤이어도 그만두지 않으면 괜찮은 거라고.
28 상실
당신과 영영의 이별을 하던 날. 장례식장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하고 망설이다 무너져 버렸던 나의 두 다리와,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워 눈물을 받쳐주던 우직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떨리고 있던 그 품들과, 내 두 손을 꽉 쥐고 너만은 울음을 참아야 한다며 부탁하던 그 원망스러운 청유와, 예쁘다 숱하게 칭찬했던 그 입꼬리를 올려 정갈히 웃고 있던 당신의 사진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사라졌다고 했다. 말다툼이 이어지다 덜컥 그렇게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나는 그날 밤 현관문의 잠금을 걸지 않고 늦고 늦은 새벽에나 잠에 들었다. 겨울의 한날 니트 한 장 걸치고 홀연히 거리를 헤맬 당신이 걷고 또 걸어서 우리 집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서.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음 날도, 다음다음 날도. 그로부터 일주일 뒤, 지난 그날처럼 덜컥 나타난 당신은 깨끗하게 세탁된 니트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다행이다. 어떤 온기에 안겨있었겠구나 라는 안도로 방임했다. '당신에게 갔어야 했어.'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생각했다. 내가 그곳에 갔었어야 했고 현관문을 걸지 않고 잠든 것에 안도해서는 안 됐었다. 나는 그날 밤 당신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온 거리를 뛰었어야 했다. 당신을 찾았어야 했고 찾아낸 후 이렇게 입고 다니면 어떡하냐며 큰소리를 내고 당신을 다그쳤어야 했다. 얼은 손을 잡아 녹여주고 얼음 몸과 얼은 마음을 안아줬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잘못했다고 빌었어야 했다.
이 죄책으로 지금까지 숱한 나의 밤을 찢어내며 여기까지 왔다. 내 존재가 죄스러웠고 걷고 뛰고 먹고 자고 하는 나의 온갖 일상들이 수치스러웠다.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는 생활이 매일같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고 감긴 눈 너머로 나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만져졌다. 그것마저도 견딜 수 없어 감은 눈을 더 꼭 감기만 했다.
30 정리
인사를 했는지 묻는다. 내게 정리란, 마지막 인사를 잘 나누는 것이다. 온갖 물건들로 어지럽혀져 마치 내 마음처럼 수런거리는 방을 치워야 할 때에도, 지금의 계절은 접어 두고 바짝 마주 선 다음 계절을 맞이할 때에도, 함께 있음으로 서로를 괴롭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도 우리는 '정리'라는 것을 한다.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고, 관계를 단절하고 인연을 추스른다. 삶에 또 삶이 정돈되어 간다. 정리를 한다.
이제껏 정리를 잘했는지 내게 묻는다. 마땅한 인사를 나눴다면 그것은 잘 된 정리다. 일 년 동안 잘 쓴 다이어리는 마지막 장도 채웠으니 새 다이어리를 사러 나가는 발걸음은 그저 가볍다. 성격 답지 않게 아껴 입은 니트를 쓰다듬으며 덕분에 따뜻했다고 잘 가서 네 발 친구들의 온도가 되어주라고 박스에 잘 담아 정리한다. 주고 싶은 마음 다 주었고 네게서는 더 받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여기서 인사 나누는 게 맞으니까 후회는 없다고 웃어도 본다. 해도 네가 했지 나는 아니라고. 단정한 마무리이길 바랐던 것들은 노력을 했다.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것들은 품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것들과, 많은 관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잘 정리를 해왔다. 단 하나만 빼고.
잘 된 정리의 반대말은 잘 안 된 정리가 아니라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쇠고랑에 발이 끌려 도착해서 억지 인사를 해야 했다. 마땅하지 않은 인사였다. 양손을 접어가며 쓰고도 셈을 하지 못할 이 시간까지 오도록 나는 정리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은 결국 당신이다. 혼자인 내가 어쩔 수 없이 고른 인사의 방법이다. 평생 달리지 않을 댓글임을 알지만 계속 살아 내기 위해선 내 방식으로 인사해야 한다. 길어진 인사 끝 언젠가는 당신이 잘 정리되지 않을까 라는 바람을 놓지 않고.
작가 소개 > > > 지금 삶에서 반은 인천에서 살았고 이후의 반은 서울에 살고 있다. 몇 밀리가 자란 건지 서른이 넘어서부터 키는 162센티미터다. 혈액형은 B형이다. 내 머리엔 가마가 세 개다. 나는 생일도 세 개다. 0104. 0209. 1127. 띠는 절기 입춘에 따른다고 해 친구들과 출생연은 다르지만 나는 용띠로 1월 4일 오후 두 시 반 서울 중계동 어느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더는 미뤄선 안된다며 외출하는 아빠에게 출생신고를 맡겼는데 나 몰라라 낚시를 가버리셨고 2월 9일에 벌금 턱걸이로 출생신고를 했다.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열네 살까지는 할머니 손에 컸다. 11월 27일은 음력 생일이었다. 겨울방학이면 아무도 내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생일을 바꿔 말했다. 선물이 아니라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그 말로 하여금 나를 떠올려주는 그 다정함이 갖고 싶어서. 태어난 날이 생일이니까, 이제까지 말하지 못해 받지 못했던 축하를 함께 살아가며 평생토록 해주겠다는 따뜻한 말과 마음을 서른다섯 살 생일에 받았다. 그래서 2025년부터 내 생일은 1월 4일이다. 0104.
스물한 살에 삶의 어떤 것을 영영 잃었고 그것은 내 안 빈터를 만들었다. 그 자리는 흉터이고 눈물은 다 말라버린 마른 바다의 곶이다. 무언가 자라나는 듯 했다가 금세 시들고 메마르고 척락해진 그 자리는 십 년이 지나고 0033 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0033. 그곳에서 당신은 긴 잠을 자고 있다. 영영 깨지 않을.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내 삶의 매뉴얼을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익혀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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