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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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c Rim 퍼시픽림, 2013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분명히 짚고가자면, 나는 덕후가 아닙니다. 덕력이 충만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다만 로봇 영화가 좋을 뿐입니다. 어떤 격렬하고 화려한 액션이 가득한 영화를 종종 즐겨보는데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며 피가 튀기고 잔인해져 버리면 그건 또 비위가 약해 잘 보지 못한다. 그런데 로봇은 어떠한가, 화려한 액션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것은 낭자한 핏빛이 아닌 번쩍번쩍 스파크 아니던가. 내가 로봇영화를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멋있잖아. 개봉 전 예고영상을 TV에서 보았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다른 영화 의 예고영상도 함께 보여지고 있었다. TV를 보던 두툼이가 말했다. "야 감시자들 보러가자" 단호박돋게 대답했다. "아니, 난 퍼시픽림 볼거야 무조건." 아이맥스로 보고싶었..

(precipice;__)/see 2013.07.18

2013 칠월의 제주 0710 # 1

바빴던 것 아니구요. 술에 잠겨있던 것 아니구요(그렇다고 아예 안 마신건 아니지만) 제주도 여행 준비 설렁설렁 하면서 비가 오면 어쩌나 떠나는 날까지 마음 졸이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어요. 서울국제도서전에도 다녀왔었고, 가서 담아온 책들을 읽기도 하면서 오빠가 2013년이 되며 사준 스타벅스 다이어리의 가죽(아마 가짜겠지) 가장자리들이 까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하기도 하고. 없는 살림에 쇼핑하겠다며 악을 쓰다 통장잔고를 다 털리기도 했구요 통금과 외박 문제로 가족 회외를 하다가 아부지를 분노케 해 현재 콩가루 집안st가 되기도 했어요. 아무튼 잘, 있어요 조금 더 긴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할게요.

09_감당해야하는 그 밤들에 대해

알아채지 못했던 몇 번의 사인과 몇 번의 밤들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한 번 더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어긋나는 뼈마디들로 비명이 으드득 비집고 나와 터져도 한 번쯤 다시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쉬운 눈초리로 외면했던 그 간절한 사인들이 이제는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것. 그때 그것들을 알아보았더라면, 오늘이 오기까지 혼자 감당하는 나의 이 밤도 없었을 텐데. 없었을지 모르는데.결국엔 이렇게 인과의 설정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맥주 여러 병을 비우고 침대에 모로 누웠다. 두 손을 포개 가슴 위에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뱉지 않고 꾹 시간을 보냈다. 수 초뿐이 지나지 않았는데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물 속도 아닌 정돈되지 않은 내 방일 뿐이었는데도 호흡할 산소의 부재를 견딜 수..

seek; let 2013.06.27

08_지난 일기

지난 일기를 본다. 2008년의 이야기다.0이 두 개 들어간 낯선 숫자를 보며 지금으로부터 뺄셈을 한다. 아, 꼬박 6년 전이구나 벌써 그렇게. 그래 맞아. 나의 스무 살에, 빛이 나던 스물두 살 당신을 만났었으니.  아침부터 즐거울 수 있던 날이었다.아르바이트 오픈을 도맡았던 날. 늦게 떠진 눈에 나를 질책하며 부랴부랴 택시에 올랐는데 그날 첫 운행을 나온 서른 살 초보 기사님과의 작은 해프닝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택시비의 절반값도 내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되려 좋은 하루 보내라며 인사를 건네는 기사 아저씨의 살가움에 짐짓 기뻐했던 것 같다.오픈은 처음이었던 나였는데, 지문 묻은 유리문 너머 부스스 찔러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가이드라인 삼아 홀 대걸레질을 해나가는 게 퍽 즐거웠다. 점장님은 잘하..

seek; let 2013.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