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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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2013

- 퇴근 후 맥주 한 잔 할까 라는 팀장님의 제안을 무참히 뒤로 넘기고 종로 피카디리 롯데시네마로 갔다. 내게 종로는 조금 그런 느낌이다. 어딘지 항상 낡아있는 느낌. 스타벅스, 맥도날드, 하물며 한 블럭 너머 롯데리아까지, 그리고 유니클로 등등 번화한 거리의 네온사인은 언제나 휘황하지만 내게 종로는 언제나 변함없이 낡아서 바랜 갱지 질감이다. 거리가 지저분해서 일까 모르겠다. 그냥 그 공간이 주는 기분이라는 게 매번 그렇다. - 힘을 뺀 김윤석의 연기. 라는 평을 곳곳에서 보았다. 처음 그 감상의 첫 줄을 보았을 땐, 이토록 감정 전달이 확고한데 왜 힘을 뺐다고 표현하며 그의 연기를 자뭇 깎아내리나 의아했는데 곰곰 씹어보니, 에서의 김윤석은 '목소리의 단조가 없는 의 뼈다구 아저씨.ver' 이었다. 그..

(precipice;__)/see 2013.10.24

절반과 또 그의 절반을 보내며

구월이 되면 드문드문 들려오는 이야기들. 그 해가 채 백일도 남지 않았다는 탄식의 말, 며칠에 사귀면 크리스마스가 백일이라는 귀여움 터지지만 나랑 해당사항 없는 말(오열) 아무튼 일개미 입장에서의 9월이 지나감은 3/4분기 마감과 같은 의미가 된다. 마감=바쁨의 공식인지라 구월 말일 전 후 일주일씩은 몽땅 온 신경을 업무에 집중한다. 요 근래 심정이 뒤숭숭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팀장님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어찌나 얄미운 지. 아무튼, 구월이 지나고 이름도 예쁜 시월이 왔다. 이름도 예쁘지 참 시월이라니. 어여쁜 이를 맞이하는 심정으로 지나간 것들에 대한 정갈한 예우로써 그렇게 사진들을 정리한다. 살이 찌기는 했지만(뜨끔) 사진에서처럼 배가 나온 것은 아닙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볼펜. 필기감이..

길어진 낮잠으로 밤의 것을 모두 뺏기고

길어진 낮잠으로 밤의 것을 모두 뺏기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새벽을 넘기고 있는 중이다. 몇 번 생각해보았던 것들에 대해 활자들로 옮겨 적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정리벽이 순간 돋아, 텍스트 창을 열었다. 지금 반복해 듣고 있는 노래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악하지 않은 스스로라는 걸 안다. 이왕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비춰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노라는 부정보다는 예스라는 긍정을 더욱 자주 입에 달고 살아왔으니까. 이십 대의 중간 지점을 어느새 훌쩍 지나쳐가는 지금까지의 나를 보았을 때 그래, 썩 괜찮은 삶이기는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전혀 부유하지 않았지만 나를 존중해주는 부모 밑에서 낳고 자라 배우고 싶던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찬란한 기회를 얻기도 했고, 아르바이트의 기억으로 거..

아무튼

기이할 정도로 오래 빛을 마주 보게 될 때가 있다. 대개의 일요일 오후쯤이 그렇다. 닫힌 방문과 해가 뜨는 자리를 등진 창문으로 이뤄진 내 방 안에 있다 보면 낮도 밤도 분별할 수 없지만, 굼뜬 몸 덩어리를 끌고 거실에 다시 와 드러누워 있게 되면 어김없이 그렇게 빛과 마주 본다. 승패가 없으니 승자 역시 없다. 우주와 생명체의 근간인 그것과 눈싸움을 겨룬다 해서 폭발적인 어떤 에너지를 공분받는 것도, 소모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냥 자리에 누웠는데 그 가시거리 안에 발광하는 그 구(球)가 있었을 뿐이다. 소득 없는 시비였을 뿐. 단락이 나눠진 장편 소설 한 권을 아직 다 읽지 못했고 두 번의 신용등급을 평가받는 암묵적인 긴장 안에서 너는 안된다는 명확한 사인을 되돌려 받기도 했고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