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에 잠겨있는 나의 부모를 곁에서 방관할 수밖에 없을 때의 그 무력감을 천천히 그러나 깊게 인정해야 할 때의 그 심정을. 경험해 본 적 없던 무력감이었다. 나의 부모를 잃었던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런 간절한 무력감이다.
회사 자리에 앉아 익숙한 순서로 업무를 보던 때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하는 때에 방해되는 것은 아니냐며 오후엔 전화를 하지 않는 분인데 그렇게 전화가 왔다. 불안한 기색 하나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하며 말을 떼었을 뿐이었는데 수화기 건너편 엉엉하는 슬픔의 단조가 들려왔다. 나의 어머니가, 당신의 어머니의 부고를 내게 말하고 있었다. 팀장님께 말을 전하고 급히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선 내 귀에 박히는 어린아이 같은 울음소리. 엄마 엄마 하며 엉엉엉 큰 울음이었다. 얼굴을 묻고 엎드린 등에 가만 손을 대어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꽃길로 마실을 가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작고 곱아진 그 몸의 크기와 검고 옹골차던 그 단단한 손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이 나와 모두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구나 마침내의 결론에 가 닿는다. 우리는 그저 어리고 약한 자식과 또 그 자식들이니까.
당신과 영영의 이별을 하던 날이 떠올랐다.
잊힌 적 없던 그 하루였는데, 보다 생생하게 선명하게 그리고 천천히 다시금 떠올랐다. 장례식장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하고 망설이다 무너져 버렸던 나의 두 다리와,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워 눈물을 받쳐주던 우직한,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떨리고 있던 그 품들과, 내 두 손을 꽉 쥐고 너만은 울음을 참아야 한다며 부탁하던 그 원망스러운 청유와, 예쁘다 그렇게 칭찬했던 입꼬리를 하고선 정갈히 웃고 있던 당신의 사진까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과,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이 내 안의 한 곳에서 마주쳐 가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슬픔 하나 내가 끼어들 수 없었고 어림잡을 수 없는 부피와 질량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저 언제고 한 발치 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에 불과하니까.
당신에게 부탁을 했다.
어느 때고 당신보다 아량이 깊거나 넓지 못했던 나라서 평생을 그렇게 철부지가 되어 남기로 마음을 잡았다. 그래서 다시 또 부탁을 했다. 염치없음으로 낯을 치장하고 쭈뼛거리며 당신이 있을 그 자리 하늘 언저리에 대고 가만가만 운을 떼었다.
"우리 할머니 만나면,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따뜻하게 첫말을 떼어주고 그 작은 손 잡아주며 당신 소개를 차분히 해줘요. 그 후에 마른 어깨를 꼭 감싸 안고 함께 꽃길을 걸어주면 참 고마울 것 같아요." 그렇게 부탁을 했다. 언제고 내 말을 가장 앞에 두던 당신이었으니 그리 해줄 것을 굳게 믿으며 그렇게 할머니와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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