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채지 못했던 몇 번의 사인과 몇 번의 밤들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
한 번 더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어긋나는 뼈마디들로 비명이 으드득 비집고 나와 터져도 한 번쯤 다시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쉬운 눈초리로 외면했던 그 간절한 사인들이 이제는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것. 그때 그것들을 알아보았더라면, 오늘이 오기까지 혼자 감당하는 나의 이 밤도 없었을 텐데. 없었을지 모르는데.
결국엔 이렇게 인과의 설정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맥주 여러 병을 비우고 침대에 모로 누웠다. 두 손을 포개 가슴 위에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뱉지 않고 꾹 시간을 보냈다. 수 초뿐이 지나지 않았는데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물 속도 아닌 정돈되지 않은 내 방일 뿐이었는데도 호흡할 산소의 부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갈급한 마음으로 눈에 아린 물이 찼다.
그리고 슬퍼져 버렸다.
명확하게는, 절망스러웠다.
본 적 없는 장면에 대해 수없이 상상한다.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사람의 귀와 입을 오간 이야기였다. 어중떠중한 낱낱의 개인이 아닌 긴밀한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내게 너무 가까워 부정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사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무서웠다. 알고 있는 풍경이었고, 그려볼 수 있는 소품들이 이야기 안에 있었다. 본 적 없는 장면이 현실의 영사기에서 뿜어낸 듯 실감 나게 묘사되었다. 악몽과도 같은 씬들이 꿈과 현실의 나를 에워쌌다.
소리 내어 나를 찢었다.
무서워 담아 보지 못한 언어였다. 사죄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이미 용서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인정할 수 없는 어떤, 그리고 무엇이었다. 피의자의 자위가 피해자의 상처를 어떻게 짓밟는지 뼈아프게 절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내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쉼 없이 나를 찢었다.
당신이 죽었다.
내가 당신을 살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