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너 울잖아.'
무슨 소리냐는 듯 눈동자로 물었다. "내가?"
'그래 술 잔뜩 마시고 우리 집 가면 너 새벽에 자면서 울어. 되게 흐느끼면서.'
알은체도 할 수 없었던 새벽의 나. 새벽의 나로부터 피어나던 절망의 아지랑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덕분으로 무사한 일상일 수 있었다고 안심했던 지난 새벽의 무수한 '나'들은, 종내엔 절망의 연기를 잔뜩 피워내며 나의 울타리들을 숨 가쁘게 했었구나. 현실의 나는, 모두 내 잘못은 아닐 거라고 면죄부를 찾아내기에 조급했는데, 무의식의 나는 상처의 홍수를 방어하지 못하고 눈물로 희석하기에 바빴었나 보다.
"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촌스러웠던 차림을 한 열여덟 살의 나와, 병원 환자복의 티를 감추기 위해 애쓰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걸음이 불편했던 만큼, 극장 좌석에서도 안락을 느낄 수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기어코 보통의 남녀처럼 밖을 거닐고자 했던 건 수줍지만 '데이트'를 해보고 싶어서였구나 이제야 안다.
묶이지도 않는 짧은 머리에 열 고데기로 비뚠 물결을 넣고 맞지도 않는 친구의 구두를 빌려 신고선 뒤뚱대며 걷던 어색한 나. 그런 '나' 옆에서 잡아 쥐지도 건네지도 못하곤 허둥대던 손을 감추기 바빴던 당신. 우리 그때 참, 우리 그날 참.
"
할퀸 자국이 선명한 여러 개의 기억들에서 책갈피 메모된 듯 상처의 매뉴얼을 본다. 그 일련들로 나 그렇게 새벽에 묻혀버린 새벽을 틈타 용서받으려 했던가 싶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조차 찌그러지고 얼룩진 양철냄비의 그것 같아 평생을 그 명암을 담고 살아내려 했던 건가 싶어서 불쑥 다시 내가 불쌍해지던 밤의 대사.
그날의 엔딩은 어땠었나.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당신과 그 아래 보호자 간이침대에 누워있던 나. 새벽을 가늠하던 네 개의 눈동자. 이제야라는 망설임으로 내 손을 잡아오던 당신 손. 얼마나 떤 건지 이불을 내 목에까지 올려 덮어주며 낮게 그리고 길게 새 나오던 숨. 그 겨울에 조심스럽게 입장했던 둘의 그림자였다. 오래지 않아 당신 홀로 혹독한 계절에 던져지게 되었지만.
나의 오프닝과 엔딩이 섣부르게 손을 스쳤고 당신은 미욱할 만큼 끝을 짐작해내지 못했다.
당신에게 끝이 없었어서 아직도 나는 고독한 러닝타임에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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