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see

네가 원한다면 Anything You Want, 2013

재이와 시옷 2014. 1. 27. 00:09









2013년 가장 좋았던 영화 열 편 중에 한 편이라는 소개를 시작으로 보게 된 영화다.


나는 영화를 포함한 여러 매체들을 볼 때, 스포일러에 민감하지 않다. 결말을 미리 알게되어도 상관 없다. 그게 무척 중요한 결말 그러니까 스포일러계의 조상님 격인 영화 <식스센스>에서 브루스윌리스가 귀신이었다! 라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됐었어도 나는 영화를 봤을 것이다. 그것도 매우 집중해서 봤을 거다. 내게 결말을 미리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데에는 큰 이유가 없다. 그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분명 그것을 본 너와 다른 점이 있을테니까' 하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그 영화의 서사가 개개인에게 투여되고 이입되는 방식과 지점은 분명 다를 것이다. 주제를 강조하는 여러 씬들이 있을텐데 그 포인트 모두에서 자신을 이입하는 관객이 있을 것이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상씬에서 작은 미쟝센 하나에 본인의 모든 서사를 투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모두 생각하는 바가 다르니 끝이 어떠하든, 반전이 어떠하든, 결말이 어떠하든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짧은 줄거리와 마지막 씬의 감동적인 대사까지 모두 이야기를 들은 후에 보게 되었다. 그 짧은 설명만으로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겠구나 라는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딸의 성장과 성숙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아빠의 성장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가정과 사회를 이분화하여 각기 다른 채널로 둔다면 아빠는 분명 가정보다는 일에 소속되어있는 사회구성원이다. 즉, 가정과는 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우리 시대 가장들이 그러한 것처럼. 돌연 죽은 아내와 그 빈자리의 무게를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제껏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맡은 바 잘해왔지만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 한 적이 있었나 하는 불안함에서 자라난 두려움. 아빠는 울며 자신의 부모 앞에서 잠시 무너진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런 아빠가 딸과 함께 성장하고, 죽은 아내의 빈자리를 꾹꾹 조금 위태했지만 잘 채워나가는 그 성숙의 한걸음들을 잘 보여준 것 같다. 
그래서 뒤늦었지만 만약 내가 이 영화를 2013년 개봉 당시에 보았다면 아마 내가 꼽은 2013년 좋은 영화 열 편을 꼽을 때에 다른 영화와 자리다툼을 했을 것이다. 영화는 그만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