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릴스트립과 필립의 연기는 정말이지 경탄스럽다.
- 영화 <더 헌트>를 보고 뒤이어 본 영화다. <더 헌트>를 보며 느꼈던 감정의 깊이, 진실의 속성에 대해 이 영화를 같이 나란히 두고 본다면 더 좋은 생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본 후의 감상에 대해 정해진 답이란 건 없으니 O/X 마킹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정도를 가늠하고 다가서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생각을 연결하고 나의 것으로 정립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 말장난을 좋아한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무례한 농담과는 질적으로 다른, 위트를 얹어 자연스레 상대의 웃음을 끌어내는 그런 말장난을 좋아한다. 언어유희.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배우들의 이름을 한국식 이름으로 달리 부르는 것이나(가령, 톰크루즈를 배씨라고 부르는 등의) 때지난 농담이긴 하지만 최불암 유머 등을 구사하는 것을 볼 때면 픽픽 새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
낄낄거리는 와중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했던 말의 무게'에 대해서 이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해 정직원으로 20개월을 일하는 동안 잊지말자며 마음 속으로 곱씹 듯 새겼던 한 줄은 그것이었다. '말을 아끼자.' 한 마디 말로 상처주는 사람과 그 자리의 목격자가 되기도 했고,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구전되는 한낱 농담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상처를 받는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열 손가락으로 세기 버거워지는 경험들을 지나온 후에 더더욱 그 한 줄에 굵은 밑줄을 덧 그었다. 소속과 직책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것을 입 안으로 되씹고 상기하기를 수차례. 아마도 평생 이 한 줄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말은 하루도 거를 수 없는 것이니까.
'말'과 함께 내가 알고 있는 '진실' 음, 아마도 내겐 '진심'이 더 가깝다. 그 '진심'의 무게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디까지 믿고 있는 지, 어느 선까지가 나의 진심인 지, 떳떳할 수 있게 거짓이 없었는 지, 그렇다면 나에게 진심과 거짓에 대해 되묻는 이는 누구인 지, 내가 그 물음에 다시 진심으로 답해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이유는 또 무엇인 지. '나'의 '진심'이 무엇인 지.
- 영화 <다우트>는 한 사람의 말과 다른 한 사람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말'이라는 추상적인 것이 실체적인 '힘'을 얻는 그 과정은 무척 단순하다. 단 하나의 같은 의견=말이 더해지면 된다. 즉, 나+너. 단 두 명의, 두 개의 기둥이 세워지면 난공불락의 성이 세워지는 것은 시간 문제. 왜? 혼자가 아니니까. 이것은 단순히 수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책임을 둘로 나눌 수 있다는 안심으로 이어진다. 이 판에서 독박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 눈치의 끝이 만들어낸 비겁한 허영심.
제임스 수녀는 무언가를 보았다. 질문에 답을 하는 데에 몇 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녀의 말은 그 안에서 진화한다. "그랬던 것 같아요." 라는 말은 어느새 "그랬어요." 라는 진실로 가장 돼 힘을 얻는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여기서 다른 기둥을 찾았다. 자신의 기둥과 나란히 축을 이루게 될 또 다른 기둥. 그녀는 애초에 플린 신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생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운, 그녀 관점에서 보았을 때 눈 앞에 있는 것을 놓치고 그 너머의 어떤 추상을 보는 그가 영 마뜩찮았다. 규율에 엄격한 그녀에게 플린은 말로써 사람을 홀리는 사기꾼과 다를바 없었다. 이 심증을 어떻게든 형상화하여 빚어내고 싶은데 아직 부족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그녀 혼자만의 심증이니까. 그러던 중 제임스 수녀의 말을 듣는다. 찾았다. 자신과 함께 이 의심을 빚을 다른 이를.
플린은 그 교회를 떠났다. 떠나게 되었다.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수녀는 여전히 그 교회에 남았다. 신부가 지고 가지 않아 그대로 남겨진 '의심'과 함께.
- 내가 갖는 확신과 관념의 두께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유약한 것인 지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것은 쉽게 깨어지고 다시 그만큼 쉽게 이어붙는다. 그 맞춰진 기억과 관념의 조각들의 일그러짐은 무척 미미한 것이어서 우리는 그것들을 바로 마주보지 못한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 I have Doubt.
수녀는 끝내 뱉고 만다. 그리고 무너진다.
- 오래 또 오래 생각할 일이다. 그래야 할 일이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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